노무현 대통령의 취임과 더불어 한국에서는 대변화를 예고하는 새 시대가 열렸다. 젊은 세대와 서민층의 지지로 탄생한 새 정부의 특성은 개혁성과 자주성으로 특징 지워질 수 있는데 이러한 특성은 희망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에 불안한 요소를 내포한 일면도 있다.
개혁과 자주노선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한국이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지만 실패를 하게 된다면 국가의 총체적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큰 산을 넘어야 한다. 하나는 국내문제를 가로막고 있는 산인데 곧 국민을 통합하는 일이다. 그 다음은 국제문제 앞에 있는 산인데 곧 북한의 핵문제와 대미관계이다. 이 두개의 산을 넘지 못한다면 새 정부의 앞날은 물론 한국의 운명마저 가늠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국민 통합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했고 “지역 구도를 완화하기 위해 새 정부는 지역탕평 인사를 포함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국민적 분열은 과거의 고질인 지역주의보다 더 심각한 보수와 진보의 대립 현상이다. 이 대립은 단순히 국내정책에 대한 보혁 대립에 그치지 않고 북핵과 대미관계를 둘러싼 시각 차이를 포함하여 해방 직후의 좌우갈등과 같은 국론 분열의 양상으로 치달을 우려마저 있다.
새 정부는 국민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 국민의 참여를 특징으로 하는 ‘참여정부’란 이름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이 참여가 정부와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고 개혁적 국민의 참여만을 의미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정치권력이 프로리타리아 독재와 유사한 개혁독재에 흐를 수 있고 정권에서 소외된 절반의 국민은 반정부 세력화하여 대결과 혼미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태는 국민통합이라는 대명제에 어긋나는 일일 것 이다.
북핵 문제에 대하여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해야 하며 핵 개발을 포기한다면 국제사회는 북한이 원하는 많은 것을 제공할 것”이라면서 “북핵 문제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하며 어떤 형태로든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 개발을 평화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말을 듣지 않고 핵 개발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군사력을 쓰지 않고 핵 개발을 계속하도록 내버려둔다면 북한은 결국 핵 강국이 되어 남한에 일방적 양보나 굴복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태도를 전제로 삼지 않은 무조건, 맹목적 평화주의는 북핵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루는 현명한 대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기 전에는 그나마 군사적 대응이라도 할 수 있지만 핵무기를 보유한 다음에는 군사적 대응이 더욱 어려워지고 북한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는 길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 취임사에서 “한미동맹을 소중히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호혜 평등의 관계로 더욱 성숙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는데 한미관계는 독립적인 사안이 아니라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변수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세계의 평화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차원에서 다룰 때 한국이 북핵 제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의 군사적 대응에 대해 한국이 정면으로 반대한다면 한미관계가 적대관계로 돌변할 수도 있다. 한국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입지를 볼모로 미국에 압력을 가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벼랑 끝 외교’를 하게 됨으로써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고 말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 즉 국민적 통합,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미 우호관계 유지는 자체 내에 모순을 내포하고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은 난제 중의 난제들이다. 이 문제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지켜보면 5년 후 노 정부의 운명은 물론, 한국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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