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시청률-미스 캐스팅, 쏟아지는 비난 속상해
체질상 요부 기질없어, 그래도 최선 다하고 있다
결코 마음이 편치 않을 ‘장희빈’을 만났다.
영화 출연 약속을 번복하면서까지 욕심 냈던 장희빈, 의욕과 달리 낮은 시청률에 직면한 장희빈, ‘미스 캐스팅’이라며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시청자 앞에서 난감한 장희빈 등등.
KBS 2TV 대하사극 <장희빈>(극본 김선영, 연출 이영국)에 출연 중인 김혜수(33)는 요즘 힘들다. 몸이 힘든 것은 힘든 것도 아니다.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본이 나오기 전에는 바깥 출입도 안 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지난 19일 서울 경복궁 촬영장에서 그를 만났다. 숙종의 첩지를 받아 종4품 숙원에서 종2품 소의가 되는 날이었다. 조심스럽게 “요즘 어때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요즘 욕 많이 먹고 있어요”라는 진솔한 말로 씩씩하게 입을 열었다.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나.
▲욕을 많이 먹어서 속상하다. 하지만 속상한 것은 먹고 소화시키려고 한다. 처음엔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 온 글을 보고 상처 받았다.
하지만 고증이나 캐릭터에 대한 의견 글은 정말 힘이 된다. 모든 비난은 내가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지 못해 생긴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생이 많다던데.
▲면 저고리 입고 추운 데서 고생한 것은 나뿐이 아니다. 이영국 PD는 초반과 다르게 너무 야위었다. 시청률 부진에 대한 내색은 전혀 않으시고 오히려 ‘내 탓이오’ 하신다.
처음 사극 대본을 쓰는 김선영 작가는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인데도 갈 여유가 전혀 없다. 촬영 중 다친 한 조명 스태프는 끝까지 촬영에 임했을 정도로 모두의 애정이 대단하다. 내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
-캐릭터를 잘 살리지 못한 원인은.
▲캐스팅 된 지 이틀 후부터 촬영에 들어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역대 장희빈의 연기를 본 적도 없다.
처음엔 여유가 생기면 이미숙 선배와 정선경을 만나 물어보려 했지만 지금은 역대 장희빈이 등장한 드라마도 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면 내가 기존의 장희빈에서 못 벗어날 것 같다. 대신 이미숙 선배에게 전화로 상의하고 있다.
-요부 연기는 체질에 맞나.
▲주위에서 내 얼굴은 밝고 착하게 생겼다고 한다. 눈이 선하고 코가 낮아서 그런가 보다. 내겐 천성적으로 요부 기질이 없다. 오히려 애교는 같은 소속사의 도연이가 많지. 내가 숙종을 유혹하는 장면에서는 스스로 민망하다.
-작가와의 불화설이 있던데.
▲어떤 연기자도 늘 대본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장희빈이 너무 질투심에 불탄 요부처럼 그려지는 것에 불만이어서 논의를 했을 뿐이다.
요즘 인터넷이나 책을 뒤지면서 드는 생각은 ‘이 여자가 진짜 악녀였는지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장희빈에게도도 억울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장희빈에 대해 왜곡돼 있는 부분을 바꾸고 싶었을 뿐이다. 이런 생각은 작가와 일치한다.
■ 촬영없는 날 역사공부 삼매경
김혜수는 기존 장희빈과의 차별화 전략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여성 작가가 남성의 관점에서 벗어난 장희빈을 그린다는 점에 끌려 힘들게 이 드라마를 선택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30회 방송까지 보여준 장희빈은 ‘악으로 깡으로 사는’ 안하무인, 기세등등한 요부 이상은 아니었다.
김혜수는 "70회 남은 <장희빈>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무조건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괴롭히는 악녀가 아니라 곤경에도 처하고 눈물 나는 일도 겪는 인간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스스로의 노력도 대단하다.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고증이나 조언이 있으면 작가에게 꼭 전달하고, 촬영이 없는 날이면 인터넷으로 조선시대 역사 공부를 한다.
또 서태후 등 중국 역사 속 여인의 이야기나 조선시대를 풍미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으면 반드시 책을 구해서 읽는다.
김혜수는 "장희빈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는 것이 이 드라마에서 내가 할 일이었다"며 "역사적 사실에 근접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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