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희 기자의 취중토크] 권상우
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약했다. 소주 한 병과 ‘50세주’(알 만한 사람들은 어떤 술인지 다 알지 않을까) 한 주전자에 혀가 꼬부라지는 수준이 됐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TV 드라마 <태양 속으로>의 히어로 권상우(27)를 만났다. 그를 기다리면서 매실주 몇 잔을 미리 마셨던 기자 역시 이번엔 그리 많지 않은(?) 술에 혀가 말을 듣지 않았다.
역시 술은 파트너에 따라 주량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취기가 적당히 오른 상태에서 그와 나눈 ‘중구난방’ 토크를 옮겨본다. 발렌타인 데이 때의 데이트였다.
# 연기 이야기
김: 축하한다. 영화도 대박 났고 드라마도 반응이 좋다. 이제 흥행 배우가 된 건가.
권: 흥행 배우란 말은 정말 듣고 싶었던 표현이다. 처음엔 무지 신났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무섭다. 왜 운동선수에겐 2년차 징크스가 있고, 배우들도 흥행작 이후 다음 작품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 나도 덜컥 겁이 날 정도다. 다음에 어떤 작품을 해야 하는지.
김: 사실 폼은 근사하지만, 연기를 잘 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권: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난 연기 잘하는 배우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감정을 잘 드러내는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김: (민망해진 기자, 사태 수습을 위해) 어찌 보면 연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게 당연하다. 연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년 넘지 않았는가. 요즘엔 어떤 욕심이 생기는가.
권: 인간이란 게 참 우습더라. 지금 가장 욕심 나는 건 좋은 차다. 예전엔 알려지기만 해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좀 알려지게 되자 좋은 차를 타고 싶어졌다. 나 역시 속물이다.(그러면서 그는 얼마 전 소속사로부터 차를 선물 받은 임창정을 무지 부러워했다)
김: 차라는 게 연예인들에게 그렇게 의미가 있는 건가.
권: 뭐 안전성도 고려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자부심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 연기 이야기로 돌아가자. 지금 영화나 드라마 출연 제안이 물밀 듯 들어올 텐데.
권: 이미 생각해 놓은 작품은 있다. 영화다. 지난 번 기자와의 인터뷰 때 ‘이젠 교복 입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말을 바꿀 지도 모르겠다. 나를 잘 표현하고, 잘 표현할 수 있는 역을 맡고 싶다. 이를테면, 건달 같은. 진짜 건달에겐 따뜻한 가슴과 인간적인 면이 분명 있다.
# 연애 이야기
화제가 그 즈음 큰 사건이었던 이경실 폭행 사건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뜻밖의 말들이 이어졌다. 술자리에서 그는 정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권: 이런 소식 접할 때 마다 결혼할 생각이 없어진다. 그러잖아도 요즘 굳이 결혼할 필요가 있을까, 회의적이었는데.
김: 무슨 소리인가. 데뷔 이후 만만찮게 스캔들이 난 당사자가.
권: 솔직하게 말하겠다. 연애는 연예인이랑 해도, 결혼은 연예인이랑 하고 싶지 않다.
김: 엉? 지금 000과 만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말을 해도 되나.
권: 그녀와 친하다. 하지만 연애 느낌 보다는 친구라는 느낌으로 정착됐다. 나 때문이다. 내가 보수적이어서인지 연예인 여자는 부담스럽다. 직업상 할 수 없이 부딪혀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내 아내가 그렇다면 난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김: 연예인 커플들 중 잘 사는 커플도 많다. 오히려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 좋지 않을까.(이게 어찌 된 일인지,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
권: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또 난 내가 결혼 적령기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 문제도 잠깐이지만 깊게 고민해 본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두 사람은 부쩍 취기가 올랐다.
# 가족 이야기
스타들을 만날 때 마다 느끼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성공의 최고 원동력은 ‘헝그리 정신’이라는 생각이다. 그도 그랬다.
권: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가장 좋았던 건 형이 너무 기뻐한 것이다. 며칠 전 형이 술 한 잔 하고 전화했다. 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형에게, 형수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벌써부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김: 유복자로 알고 있다. 홀어머니가 고생하셨겠다.
권: 형은 학창 시절 단 한 번도 소풍을 못 갔다. 중 1때 까지 어머니가 파출부로 일했다. 아버지 유산 문제가 해결된 15살 때까진 먹고 사는 것도 힘들었다. 형은 공부를 잘 했고, 장남으로서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내게 형은 아버지다.(결국 눈물이 고였다. 술 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 …
권: 형은 늘 내게 부드럽게 대했지만, 난 형에게 말 한 마디 제대로 건네지 않았다. 형은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사대에 진학해 교사가 됐고, 나 역시 어머니 권유에 따라 사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제대 후 무작정 상경했다. 꿈을 이뤘기에 망정이지, 만약 실패했더라면 두 사람, 아니 형수까지 세 사람 볼 낯이 없었을 것이다.
김: 가족들에게 잘해야겠다.
권: 그러잖아도 요즘 우리 집에 좋은 소식 뿐이다. 결혼 3년 만에 형 부부가 아이를 가졌다. 조카 놈, 태어나기만 해봐라. 내가 뭐든 다 해줄 거다.
이제 막 톱스타의 대열에 오르려는 권상우와의 술자리는 흐뭇하게 마감됐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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