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은 여러 가지 기벽으로 유명하다. 그 중 하나가 그의 독특한 패션이다. 드골은 곤색 한가지 양복만 입었다. 한 색깔의 똑같은 양복을 70여벌 준비해 놓고 수시로 갈아입었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 국가 지도자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살피면 곤색 계통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그래서인지 곤색 양복은 국가 지도자들의 유니폼이 된 느낌마저 줄 정도다.
드골이 곤색 양복을 입고 공개 석상에 나타나던 그 시절 중국의 지도자들은 양복을 입지 않았다. 모택동을 위시한 지도층은 하나같이 인민복 차림이었다.
소련 지도자들도 양복을 잘 입지 않았다. 스탈린이 사망하고 독재자 개인숭배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지도자들이 공식석상에 양복차림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도 비슷한 경로를 겪었다. 모택동 사후 개혁개방 정책이 도입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인민복이 슬며시 사라지고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양복 차림으로 국민 앞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들의 유니폼은 국적과 관계없이 통일돼 있다. 조용한 색감의 셔츠에 양복차림이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70년대에 한 말이다. 다국적 기업 등장과 함께 세계화의 시대를 내다보면서 비즈니스 세계의 드레스 코드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기업계뿐 아니다. 세계의 정치 무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드레스 코드다. 일종의 세계화된 복장이다. 서방 세계는 물론이다. 구 공산권지역, 또 아프리카지역 국가 지도자들도 이제는 이 드레스 코드를 따른다.
드레스 코드를 준수한다는 건 기본의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사고가 통하고 그럼으로써 서로 신뢰할 수 있고 대화를 할 채비가 되어 있다는 무언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는 항상 보일러공 복장을 하고 있다.” 김정일에 대해 한 미국 기자가 쓴 구절이다. 김정일의 복장은 항상 똑같다. 어디서나 인민복 차림이다. 오기라고 할까. 그런 게 서린 것 같다.
DJ와의 정상회담 때도 인민복 차림이었다. 이른바 ‘현장지도’에 나간 모습도 마찬가지다. 세계 표준의 드레스 코드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고립의 모습이다. 이게 미국의 젊은 기자에게는 상당히 생경하게 비쳤을지 모른다. 그래서 ‘보일러공 복장’이란 표현이 나온 것 같다.
이번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새로운 패션’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초였던가. 노 당선자가 두루마기를 입고 공식 석상에 나타난 게. 새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한 달이 다 지나고, 설이 지나도 여전히 두루마기 차림이다. 주요 공직자를 만나는 자리에도 두루마기 차림이다. 민주노총을 방문할 때도 두루마기 차림이다.
계속해 두루마기 차림으로 노 당선자가 공개 석상에 나타나자 타임지는 드디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최근 수주 동안 노 대통령 당선자는 한국의 전통 의상을 골라 입고 공식 석상에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하나의 민족주의적 제스처로, 뭔가 섬뜩한 구시대적 착상 같아 보인다.”
웬 느닷없는 옷 타령이냐고. 복장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때로는 사고의 방향을 알린다. 복장은 변형된 자아이고 전인격의 확장이다. 무언의 언어로서 상징적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자아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서 하는 말이다.
복장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사고체계가 변한다는 의미도 때로 지닌다. 공산권 지도자가 양복을 입기까지, 그러니까 국제화된 드레스 코드에 순응하기까지 상당한 세월이 필요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노무현 당선자의 두루마기 차림은 ‘역(逆)의 스토리’이다. 일종의 복고(復古)요, 어찌 보면 퇴행이다. 왜 양복을 입었던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두루마기를 입게 됐는가. 미 언론의 관심의 포커스도 이 점에 있다. 타임지 지적대로 민족주의자를 자처하기 위한 제스처인가. 아니면….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런데 우연치고는 너무 묘한 일이 잇따르고 있다. 두루마기를 입은 노 당선자의 발언이, 행보가 너무 혼란스레 비쳐져서다. ‘이념형 청와대’ 소리가 들린다. ‘개혁독재’의 우려가 높다. ‘노무현식 인사’를 둘러싼 비판이다. 안보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노 당선자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맹방인 미국과 다름을 공개적으로 거듭 강조하면서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국민의 애국심 발휘를 요청해서다. 한마디로 한국민들은 헷갈리고 있는 모양이다.
며칠 후면 한국의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새 대통령의 첫 공식 발언을 전 세계는 주시하고 있다. 한국이 월드컵 4강이어서가 아니다. 세계 10여위 경제 대국이어서도 아니다. 북한 핵위기 때문이다. 노무현 당선자, 아니 새 대통령의 말은 앞으로 전개될 남북관계와 미국과의 관계에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과연 어떤 발언을 할 것인가.
그건 그렇고, 노 신임 대통령은 취임식 날에도 두루마기를 입고 나올 것인가. 그 점 역시 궁금하다.
옥 세 철 <논설실장>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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