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입맛에 맞는 스페인 요리
열정적 플라멩코 공연속 맛깔스런 타파 요리 일품
이동원의 향수가 아닌 베사메무초를 좋아한 게 뭐 그리 큰 죄일까. 노태우 전 대통령 얘기다. “뽀뽀해 주세요”의 의미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연인 이름 마냥 “베사메무초야!” 하고 노래를 불러도 가슴만 이렇게 사무쳐 오는데. 마이크를 부여잡고 베사메무초 노래부르던 각하의 모습을 상상하면 피식 웃음이 새나온다. 민족주체성 없다고 그를 탓할 것 전혀 없다.
스페인 레스토랑 라 루나 네그라(La Luna Negra)에서 라틴 센세이션이 들려주는 스페인 노래 가락들을 듣고 있자니 맑은 물에 물감 풀어놓은 것처럼 가슴이 알싸해진다. 꼭 볼링 핀 모양의 타악기 마라까스(새샘 트리오에서 전언수가 꾸꾸루 노래할 때 최진희가 우아하게 흔들던 것)와 장난감 북 같은 팀발레스에 기타와 키보드만으로 구성된 옹색한 밴드지만 사람 휘어잡는 노래를 잘도 불러 재낀다.
‘아모르’며 ‘데끼에로’ 하는 구절이 간간이 들려오는 걸 보니 날 버리고 떠난 님 잊지 못한다는 내용의 사랑 노래임이 분명하다.
패티 김, 조영남의 번역 곡으로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스페인 노래들은 오리지널 송을 몰랐더라면 깜빡 속았을 정도로 우리 정서에 꼭 들어맞는다. 그래서일까. 라 루나 네그라의 스페인 음식들은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먹어왔던 음식들처럼 입맛에 맞는 것은.
잠시 음악이 멈춘 사이 사방을 둘러본다. 천장이 시원하게 높은 공간은 주황과 파랑 물감을 번지게 칠해 몽환적인 이미지고 노란색의 귀여운 꽃들은 벽화로 피어나 봄날 같은 포근함을 안겨준다.
벽에는 빨간 천을 붙들고 있는 투우사 에스까밀리오와 부채를 쫙 펴들고 남자들의 혼을 빼놓을 듯 관능적인 춤을 추는 카르멘이 서로를 마주보며 삼킬 듯 뜨거운 시선을 교환하고 있다. 그 밖에 스페인을 추억하게 하는 다양한 모티브들이 각기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테이블 색깔도 뜨거운 열정을 지닌 라틴 유럽인들의 취향을 표현하듯 파랑, 빨강, 노랑, 초록 제각각 이지만 한데 어울리니 꽃밭처럼 조화롭다.
메뉴를 들여다보니 전채가 없고 타파(Tapa)만 보인다. 물리적으로 타파란 작은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 맛보기 요리이지만 진정한 의미는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좋은 이들과 함께 여유를 만끽하며 즐기는 매개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좋은 친구와의 열정이 가득한 대화를 나누며 맛깔스런 타파를 요것조것 맛보는 것은 삶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무스로 안을 채운 연어(Salmon Relleno), 염장 대구포(Bacalao)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해 봤던 요리들. 샹그리라 한 잔과 함께 하니 조금 짠맛도 중화되는 듯한 느낌이다. 새우 구이(Gambas al Ajillo)는 정말 크고 통통한 새우를 썼고 양념 맛도 좋다. 조갯살(Galician Scallops)은 부추와 함께 베이컨에 돌돌 말아 튀겼고 속을 채운 피망(Stuffed Red Pepper)은 새우와 닭고기, 라이스를 그 큰 주머니 안에 넣어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시금치, 버섯과 함께 바삭거리는 파이 크러스트에 싼 연어(Salmon con Espinaca)도 아주 특이한 먹거리. 오징어 순대(Lomito a Cabrales), 버섯 완자(Hongos Rellenos)는 어딘지 잔치 상에서 많이 봐왔던 우리 전통 음식과 비슷한 면이 있어 정겹다.
메인 디쉬들은 한 상 푸짐하게 차려 나온다. 사프론으로 향을 낸 스페인 밥 빠에야(Paellas)는 해물, 닭고기, 야채 등 종류대로 준비하고 각종 해물을 토마토 국물에 부어낸 찌개(Zarzuela)도 프랑스 식당에서도 맛봤던 것과 비슷하다. 라 루나 네그라의 스페셜 시금치 소스를 곁들인 스테이크(Sollomillo con Sausa de Espinaca)도 독특한 스페인 맛을 만끽할 수 있는 메뉴.
주말 저녁 카르멘의 후예들이 펼치는 열정적인 플라멩코 공연은 우리 모두를 세비야의 릴리아스 파스티아 선술집으로 초대한다.
저렇게 타오르는 열정의 춤을 추었으니 착하고 예쁜 약혼녀 미카엘라가 눈에 찰리 있나. 라 루나 네그라에서 펼치는 공연을 대하며 집시 여인 카르멘 앞에서 그토록 허우적거린 돈 호세의 타다 못해 숯검정이 된 가슴을 헤아려본다.
Tips
▲종류: 스페인 요리. ▲오픈 시간: 화-목요일은 오전 11시-오후 2시 그리고 오후 5-10시. 금·토요일은 오전 11시-오후 11시. 일요일은 오전 11시-오후 10시. 플라멩코 댄스 공연은 금요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은 오후 7시30분과 10시 30분 두 차례. 토요일 오후 10시에는 여성 댄서들의 공연이 있다. 라이브 공연은 수·목·일요일 오후 7-10시. ▲가격: 타파와 샐러드, 샌드위치는 5-10달러. 메인 디쉬는 15-18달러. ▲주차: 발레 파킹 Validation을 받으면 5달러. ▲주소: 44 W. Green St. Pasadena CA 91105. 2번 N. → 134 E. → Colorado Bl. 출구에서 내려 S. Orage Grove Bl.에서 우회전 →W. Green St.에서 좌회전. ▲예약 전화: (626) 844-4331.
<박지윤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