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반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던 때 스티브 리(45·금융업)씨는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 땅속을 다니는 그 열차는 사람을 싣기가 무섭게 다음 역에 데려다 놓았다. 참 신기했었다.
몇 해 전까지 윌셔가의 교통 체증을 부추기던 지하철 공사가 끝나 윌셔와 웨스턴 코너에는 근사한 지하철역이 우뚝 들어섰다. 한인타운을 운전하고 다니던 그는 도대체 저 아래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궁금해진다.
스티브 리씨는 만원버스로부터 시작해 등하교시 콩나물 시루 같은 전철에서 부대끼면서 함께 사는 세상을 배운 세대. 태어나는 순간부터 편안한 승용차만 타본 제니퍼와 스테이시에게 대중 교통수단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은 살아있는 좋은 교육이 될 것 같다. 블루 라인을 타고 롱비치로 나들이를 떠난 지난 주말, 스티브 리씨 가족은 승용차를 타고 편안하게 이동할 때와는 전혀 다른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됐다.
1999년에 완공된 윌셔 웨스턴 역은 널찍하고 깨끗하며 타일로 만들어진 다인종 커뮤니티의 벽화가 눈길을 끈다. 전철을 타는 첫 스텝은 티켓 구입. 자동 티켓 발매기에 1달러짜리 지폐 3장을 넣었더니 왕복 티켓과 함께 30센트의 거스름돈이 나온다.
블루라인으로 갈아타기 위해 레드라인을 타고 간 7가 메트로센터까지의 구간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롱비치까지 이어지는 블루라인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백팩을 맨 청바지의 학생, 올망졸망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히스패닉 여인, 99센트 온리 샤핑백을 한아름 들고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할 만큼 삶이 척박해도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이 새삼 존경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메트로의 이용객들이 저소득층만은 아니다. 비즈니스 수트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이들도 복잡한 다운타운의 교통 혼잡을 피해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있었다. 레드라인의 하루 평균 승객은 13만5,000명, 블루라인은 7만명이라는 통계 수치는 메트로 라인이 LA를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대중 교통수단임을 얘기해 준다.
블루라인으로 갈아타니 열차는 지상으로 나온다. 다른 자동차들이 모두 신호 대기에 걸려 있는데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만 움직이는 것이 신나는지 스테이시는 박수를 쳐대며 좋아한다. 스테이플스 센터와 많은 한인들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다운타운 패션 디스트릭트를 지나 워싱턴에서 좌회전하면 회색빛 공장 지대. 이제껏 봐왔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의 LA가 눈앞에 펼쳐진다.
티켓판매도 기계, 지하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 볼 수가 없어 티켓 검사는 누가 하나 싶었는데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셰리프들이 블루라인에 동승해 티켓 검열을 시작한다. 새삼 파리 메트로에서 목격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무임승차했다가 경찰의 추격을 받고 죽기 살기로 도망치던 젊은이. 메트로 라인에서는 그런 무임승차 승객은 없는 듯 했다.
조금 붐비는 시간이어서였을까. 카슨 역에서 열차에 올라탄 여인이 몸을 투신하듯 자리에 앉는다. 세상 어느 곳에 가든 자리를 차지하려는 소시민들의 작은 제스처는 우리를 미소짓게 한다. 옆자리에 앉은 여인은 시종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파리와 도쿄의 지하철에서 만났던 책 읽는 여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LA에서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하늘 아래 어느 곳이나 전철 안에서 물건을 파는 잡상인은 있게 마련. 고무줄, 좀약, 선풍기 커버 등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구하기 힘든 생활용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전철 안이었다. 키가 육척이나 되는 커다란 상인 하나가 방물 장수마냥 가슴팍에 향수병을 가득 매달고 다가오지만 어느 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다.
길거리, 밀리는 자동차의 행렬, 리커 스토어, 맥도널드. 방금 전까지 그 안에서 허우적대던 세계는 탈 것을 달리했다는 이유로 저만치 떨어져 여유롭다.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세상은 항상 살 만하고 그리워진다는 진리를 스티브 리씨는 오늘 전철 나들이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차창을 바라보며 롱비치까지 펼쳐지는 22마일 구간을 달린 1시간. 봄을 맞아 물이 오른 꽃나무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마음에 여백이 생긴 스티브 리씨 가족은 차 세울 곳 찾는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태평양을 안고 있는 롱비치 시내를 마음껏 향유했다.
전철로 가는 롱비치 나들이
전철 타고 롱비치까지 나들이를 하려면 한인타운 윌셔와 웨스턴 역에서 메트로 Red Line을 타고 7th St. Metro Center에서 내려 Blue Line으로 갈아탄다. 전철은 약 1시간 동안 22마일 구간 22개 역 사이를 달린다. 롱비치 역에서 내리면 태평양 수족관과 퀸 메리호 등 롱비치 시에서 갈 만한 곳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
열차는 약 5분마다 한 대씩 도착한다. 오전 4시41분 첫 열차가 LA 윌셔-웨스턴 역에서 출발하고 롱비치 마지막 열차는 오후 11시21분에 떠난다. LA 도착은 12시40분. 메트로 라인 요금은 편도 1달러35센트, Transfer 25센트. 왕복요금은 2달러75이다. 자세한 사항은 웹사이트,
www.mta.net을 참조하면 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