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로 세계가 시끄러운 가운데 탈북자가 다시 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릿 저널 등 미 주요 언론은 탈북자 돕기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한 사설을 최근 잇달아 내보냈다. 유엔이 인정한 난민 1호로 한국 땅을 밟은 이민복씨를 만나 탈북자의 최근 동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탈북자 유엔난민 1호 이민복 씨
한국 젊은이들 감상주의 탈피해야
인권 문제 떠들수록 효과 있어
-최근 배를 타고 한국에 들어오려던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적발돼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탈북자가 다시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20만으로 추산되는 중국 내 탈북자는 중국 당국으로서도 골치 아픈 문제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뭐라 생각합니까.
▲탈북 센터를 세워 이들이 가고 싶은 나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몽골에 난민 센터를 세우는 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들을 여기 정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수속을 밟아 원하는 나라에 가 살게 하자는 것입니다. 탈북자의 대부분은 한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탈북자들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몇 년 전까지도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찬밥 신세였습니다. 중국에 있는 한국 공관에 가 망명을 신청했다 한국 외교관으로부터 “경찰을 부르기 전에 당장 나가라”는 대접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난 여름 장길수 군 일가족 탈출 사건 후 한국 정부 태도가 달라져 이제는 일단 공관에만 들어오면 모두 받아줍니다.
-몽골에 난민 센터가 생기면 중국 내 탈북자 사회와 북한 내부에 어떤 변화가 예상됩니까.
▲중국 내 탈북자들은 먹을 것도 없지만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한 채 하루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탈북 센터는 이들에게 자유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은 물론 대규모 탈북 행렬을 유발, 북한 사회에도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북한에 있을 때 엘리트 출신 농업 전문가로 ‘잘 나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망명 길에 오르게 됐습니까.
▲북한의 식량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80년대 후반부터 그런 조짐이 보여 농업 개혁을 하지 않고는 기근이 온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돼 숙청 당할 처지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95년 러시아에서 유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한국에 온 후에는 어떤 일을 했으며 이번 미국에는 어떻게 오게 됐습니까.
▲기독 탈북인 연합과 한사랑 통일 출판사 대표로 있으면서 북한 선교와 탈북자 실상을 알리는 일을 해왔습니다. 미국에 온 것은 북한 인권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드는 사업을 할리웃 관계자들과 추진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반응은 어떻습니까.
▲최근 북한이 계속 뉴스로 뜨고 있어서인지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에드 로이스 연방하원의원 등 미 정치인들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북한 판 ‘신들러스 리스트’ 같은 영화를 만들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요즘은 북한에서도 경제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으로 봅니까.
▲김정일의 경제 개혁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개혁을 하자면 과거를 부정해야 하는데 김일성으로부터 정권을 이어 받은 김정일로서는 이것이 불가능 합니다. 과거 소련이나 중국 예를 보더라도 스탈린과 모택동이 죽었기 때문에 개혁이 가능했습니다. 부자가 대를 이어 권력을 잡고 있는 북한은 김정일이 살아 있는 한 진정한 개혁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 촛불 시위 등 반미 감정과 북한을 두둔하는 분위기가 젊은이들 사이에 일고 있습니다.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북한 실상을 너무 모르고 감상적으로 떠드는 것은 문제입니다. 교통사고로 죽은 여중생은 추모하면서 북한의 도발로 숨진 장병들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은 밸런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이라면 무조건 배척하던 과거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제일 정신 차려야 할 사람들은 한국의 보수 계층입니다. 이들은 정통성 없이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급급해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탈북선을 타려다 잡힌 사람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시작됐고 LA에서는 16일 한인타운 인근 중국 영사관(샤토와 4가)에서 벌어질 예정입니다. 탈북자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중국을 자극,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올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아Q정전’에 나오듯이 강자에는 약하면서 약자에는 강한 것이 중국인들입니다. 탈북자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고 중국이 이들의 권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인권과 관혼상제는 떠들수록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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