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 데일리 뉴스에서 최근 북미 정세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젊은 미국인 기자는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부터 먼저 꺼냈다. 요즘 며칠 좀 잠잠해졌지만 그 때만 해도 금세 전쟁이라도 날 것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는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살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을 대표해서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문제에 전문가일 것이라는 기대를 받게 되면 조금 난처해진다. 태어나서 자란 한국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북한에 대해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안다고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지난 한 달 동안 미국 주류 신문 방송에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악화일로에 있는 북미관계를 다루는데, 한국사람이 직접 나와 이야기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아무래도 언어문제 때문이긴 하겠지만, 영어가 조금 원활한 경우에는 내 자신처럼 북한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아마 나서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8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북한에서 온 사절단이 서울 명동거리에 나타났을 때 그 사람들이 머리에 뿔도 없고 우리하고 똑 같아서 놀랐다고 했던 어떤 젊은이의 반응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공산주의자들은 머리에 뿔이 난 악마라도 되는 것처럼 상상을 했다는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게 들리지만 반 세기가 넘은 분단의 역사에서 남북간의 문화적인 교류가 시작된 것이 불과 지난 몇 년 새 일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그렇게 한심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전공을 서양연극사로 정했던 나 역시 북한 연극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학교 연구실에서 우연히 북한연극 비디오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80년대만 해도 북한 서적이나 비디오를 보면 경찰에 붙들려가던 기억에다 멀리 미국 땅에 와서 북한 비디오를 자유롭게 보고 있다는 아이러니컬한 감상까지 겹쳐 넋을 팔고 있는데 지나가던 동료 교수가 아, 아름다운 음악! 하면서 불쑥 연구실에 들어섰다.
제목도 섬뜩한 피바다 라는 혁명가극이었는데 마침 화려한 무용과 음악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대사를 알아 들을 길 없는 내 미국인 동료는 무슨 연극이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가 하며 찬탄을 금하지 못했다. 선동적인 공산주의 연극이라고 설명을 하는 데도, 아름다운 선동극!이라며 연신 찬사를 보내고 나가는 동료의 그 천진무구(?)한 뒷모습에 나 역시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 라면, 요즘 북한과 미국은 멀고도 먼 나라 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한 달 정도 북한과 미국 사이에 오고 간 공방을 듣고 있노라면 동문서답이라고 해야 할지 일구이언이라고 해야 할지 양방이 언어 소통에 큰 문제가 있고 오해도 많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오해를 풀어 주는 데 앞으로 나서 한국과 북한의 입장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안타깝고, 그래서 데일리 뉴스의 기자가 질문을 할 때 북한에 대해서 내가 조금 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급변하는 북미관계를 지켜보면서 상상력과 포용력이 부족한 정치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을 때 그 통로를 뚫어 주는 일은 문화와 예술의 몫이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미국의 동포들은 주로 종교적이거나 구호적인 차원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가족을 찾고 만나는 차원에서 북한과의 교류를 이어 오는 데 기여했다. 그런데 그런 교류조차도 어려워진 상황에 너무 앞서가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때일수록 북한과의 문화 교류는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사람이 왕래를 해야 하는 공연문화의 교환이 어렵다면 미술전시나 영화상영 같은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교환이라도 활발하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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