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신의 타이어 압력 메시지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있으며 당신들의 마지막 교신을 듣지 못했다” 휴스턴의 미항공우주국 본부가 지구 귀환 길에 오른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 보낸 연락이다. 이에 컬럼비아호 선장 릭 허즈번드가 답했다. “로저, 어, 버…” 하다가 교신은 두절됐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우주 왕복선에 몸을 실었던 7명은 이렇게 이렇다할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들리지 않은 유언은 착륙 예정지인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 나온 환영객들은 물론 지구촌 모든 이들의 마음에 공명하고 있다.
산화한 우주인 7명이 유언을 남길 시간이 있었으면 분명 “인류 평화에 힘쓰자”고 했을 게다. 이들은 16일간 우주여행 중 생물학, 의학, 자연과학, 기술 등 실험을 통해 인종과 국적에 관계없이 인간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힘썼다.
무중력 상태라 음식을 식도 아래로 삼켜 내리지 못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어도, 몸 안에 수분이 머리 쪽으로 몰려 갈증을 인지하지 못해 적절한 수분을 유지하기 어려워도 남들에게 건강한 삶을 마련해 주기 위해 촌각을 다퉈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으니 이들의 평화 메시지는 듣지 않아도 귓가에 쟁쟁하다.
세계 평화 기치를 내걸고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행보와 사뭇 다르다. 앞으로 닥칠지 모를 이라크의 테러로 인한 미국의 인명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이라크의 수많은 인명피해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는 ‘세계 평화’하고는 거리가 한참 먼 강변이다.
미국의 일방적 ‘평화 캠페인’에 제동을 걸고 있는 국제사회가 우주인들의 ‘평화 노력’에는 한마음으로 박수와 애도를 보내는 이유를 짚어봐야 한다. 이라크에 대한 유엔사찰단에 좀더 시간을 주자며 부시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 중국 장쩌민 주석, 독일 슈뢰더 총리, 그리고 성조기를 불태우며 반미를 외쳐대는 팔레스타인들의 자치정부 수반 아라파트도 우주인들의 업적을 기리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부시가 서둘러 이라크를 공격하려는데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국제사회가 이유 없이 미국에 딴지를 걸려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부시의 공세가 세계 평화를 진작시키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여론을 무시해선 안 된다. 우주인에 대한 애도물결을 보고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우주인들이 사고에도 불구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면 “방심하지 말라”는 유언을 했을 법하다. 이들은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면서 성취감과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을 것이다. 1942년 우주선 발사이래 67년 발사시험 도중 화재로 3명이 숨지고, 86년 이륙 73초만에 폭발해 우주인 7명이 사망했지만 모두 이륙한 뒤 궤도에 진입하기 전에 발생했다.
일을 무사히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던 컬럼비아호가 착륙 10여분을 앞두고 산산조각 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완전히 착륙하기 전까지는 방심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이들은 희생으로 웅변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초전 박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그리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국방부 고위자문그룹인 국방정책위원장의 “30일내 승리” 발언은 왠지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한다. 후세인을 몰아내는 것은 어쩌면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 같다.
융단폭격으로 후세인 군대를 무력화할 수는 있겠지만 이라크 주민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지루한 싸움이 될 소지가 얼마든지 있다. 미국 단독으로도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지만 새 정권을 세우고 유지하는 데는 버거운 일들이 수두룩할 것이고 그 때마다 국제사회의 협조가 아쉬워질 것이다. 일방주의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주인들은 죽으면서까지도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평화 노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길 바란 것 같다. 20만피트 고공에서의 기체 폭발로 잔해가 부시의 고향인 텍사스를 포함해 2만8,000스퀘어 마일의 넓은 지역에 널브러졌으니 말이다.
부시는 이번 비극을 이라크 공격을 위한 애국심 고취의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다. 감상적 애국심을 조장하거나 이에 편승한 지도자는 종종 비극을 가져다 주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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