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 김명욱(종교전문기자.목회학박사)
1996년 혼자 자동차로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왕복 한 적이 있다. 박사학위 마지막 논문 패스를 앞두고 급히 학교에 갈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L.A. 클레어몬트에 있는 학교에 가면 한 달 이상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로 뉴욕을 떠났었다.
1987년 뉴욕에서 L.A., 1992년 L.A.에서 뉴욕 등 왕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이 때도 혼자였다. 이렇게 두 번 미국 동부에서 서부, 서부에서 동부까지 왕복한 경험 중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미국 땅덩어리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 혼자 생각에 “내가 죽어도 이 땅에 묻힐 곳은 많구나” 했었다.
1987년 동부에서 서부로 갈 때는 한 여름이었었다. 옥수수 밭을 지날 때의 끝간데 없이 널려있는 옥수수들. 장관이었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는 약 3,000마일이며 자동차로 가면 일주일이 걸린다. 시간대만도 3시
간이 차이가 나며 속도 제한도 55마일부터 90마일까지 다양하다.
사막 같은 광야를 가로지르는 곳에서는 속도제한이 90마일로 올라간다. 이런 곳에서는 마을이 100마일에 한 곳씩 있는 곳이 있어 주유소 사인 판을 잘 보아야 한다. 그러니, 개스는 주유소가 있을 때마다 충분히 채워 넣어야 안심하고 달릴 수 있다.
짧든 길든, 여행은 혼자 하는 것보다는 둘이 함이 좋다. 둘이 하는 것보다는 셋이 좋고 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자동차 장거리 여행의 경우 번갈아 운전을 해 피곤을 덜 수도 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왠지 쓸쓸하다. 사막 같은 광야를 지날 때는 고독해진다. 그러나 그 고독을 잘 음미하면 뜻하지 않게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속됨이 아닌 인간 본연의 순수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막과 광야는 그래서 도를 닦는 사람들이 찾는 곳인 모양이다.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논문을 패스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올 때였다. 광야를 가로지
르는 곳에서 한 사람이 멀리서 차를 세우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을 혼자 가는 길손. 자동차도 뜸뜸이 지나는 황막한 곳이었다. 가엾은 생각이 들어 가까이 가서 차를 세웠다. 태웠다. 젊은 백인 청년이었다.
그런데 태우자마자 청년의 몸에서는 냄새가 진동했다. 정신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퀴퀴한 냄새가 금방 차안을 가득 매웠다. 그 청년의 머리에서부터 발가락까지 냄새 안 나는 곳이 없었다.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다. 콜로라도 주까지 간다고 했다. 거기서 콜로라도 주까지는 최소 한 7~8시간은 가야 한다. . 그 청년은 자신을 “도 닦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나이는 스물 두 살.
산과 들을 걸으며, 마을이 나타나면 주린 배를 채우는 등 두 달 이상을 홀로 고독의 여행을 해왔다고 한다. 그 동안 몸을 씻지 않았으니 몸에서 그렇게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 계룡산에서나 있을 ‘도 닦는 사람’을 미국의 허허 벌판에서 만날 줄이야. 때는 4월이라 광야의 찬바람은 매서웠다. 자동차 문도 열 수 없다. 냄새는 계속 진동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신학생이라 하니, 냄새 따윈 아랑곳없이 현대 과학문명과 물질주의 및 배금사상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또 예수의 기독교사상과 동양의 철학사상도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나그네 같은 생을 살아간다고 설명한다. 구구절절 맞는 얘기만 했다.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혼자 하는 광야의 운전 중 ‘2,000년 전 예수 같은 젊은이’를 만나 냄새는 났지만 7~8시간이 그냥 흘러가 버렸다. 드디어 그가 내릴 곳이 가까웠다. 그는 못내 나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그리고는 내 손을 꼭 잡고 “잘 가라”고 했다.
7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 청년이 생각나곤 한다. 그 때, 그는 광야에서 굶어 지쳐 쓰러지면 죽는다. 그리고 뱀에 물리거나 맹수들의 공격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는 그런 불안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서는 죽음도 불사한 자유 같은 여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 청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헤어질 때 서로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았기에 그렇다. 그 청년처럼 모든 것을 다 버리려 할 때 죽음도 두렵지 않는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지 않을는지. 나그네 같은 삶. 자유가 아쉬운 시대에 사는 것 같다.
김명욱(종교전문기자. 목회학박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