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아이들 키우며 사는 것 하나로도 바쁜 젊은 시절엔 노후 준비라면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만 같지만 아이들이 집에서 떠나기 시작하는 중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그 말이 슬슬 귀에 걸리기 시작한다. 점점 다가오는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미지의 그 시간에 평생 가족들 부양하느라 힘들게 해오던 일을 놓고 그저 즐겁게 놀기만 해도 될지, 평생 가족들 뒷바라지만 했으니 이제는 내게 보람있는 일거리를 찾아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을지, 계획대로 되는 않는 것이 인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중년부터라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면 덜 생소한 노년을 맞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요즘도 남가주 한인 커뮤니티 곳곳에서 작곡가요 지휘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환철, 찰스씨(66)는 60세부터 3년간 다각도로 노후 준비를 위해 조사하고 정리한 결과, 3년전 실비치 소재 노인 커뮤니티 ‘레저 월드’에 입주했다. 결과는 대 만족,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박씨는 말한다.
1962년에 건설, 55세 이상으로 건강해야 구입 가능
기후, 교통 좋고 안전해 인기, 한인도 40여가구 입주
태평양이 1.5마일 떨어진 지척이라 여름에도 덜 건조하면서 시원하고, 가든 그로브 한인타운이나 22, 405, 605 프리웨이가 지척이니 교통 편리하고, 단지 안에 병원부터 골프장, 수영장에 야외 공연장까지 온갖 편의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데다, 게이티드 커뮤니티 안을 또 24시간 시큐리티 가드가 순찰을 도니 안전하고, 모기지 페이먼트까지 없으니 “정말 마음이 편하다”고 박씨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자동차고 집이고 문을 잠글 필요가 없어요. 한밤중에도 마음놓고 산책하고 아내가 외출했다 늦게 들어와도 불안하지 않아요”
작년 5월에 이사했다는 수잔 안씨(60)도 남편 안영화씨(67)가 은퇴한 후 부부가 함께 액티비티를 즐기며 살 곳을 물색하다 실비치 레저월드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과 함께 그 많은 시설과 서비스를 매우 즐겁게 이용하고 있다는 안씨(562-810-1614)와 박씨(562-493-6601)는 소일거리 삼아 가지고 있던 라이선스를 이용, 레저월드내 주택만 취급하는 부동산 에이전트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실비치 레저월드내 한인 입주자는 40여가정을 헤아린다. 이들은 3년전부터 한인회(회장 이동수)를 조직, 2개월에 한번씩 친목 모임을 갖고 윷놀이, 건강정보, 사회보장에 관한 세미나등의 활동도 한다.
지난 1962년, 은퇴자를 위한 ‘지상낙원’을 표방하며 ‘골든 레인 파운데이션’이 건설한 실비치 레저월드는 533에이커의 대지 위에 1베드룸, 2베드룸 아파트, 콘도미니엄등 총 6482개 유닛이 들어선 16개의 ‘뮤추얼’이라 불리는 단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유닛마다 소유주가 있고 자유로이 거래할 수 있지만 형식은 ‘코압’으로 주인은 골든 레인 재단의 ‘스탁’을 하나 사는 형식이다. ‘스탁’은 현찰로만 거래하므로 목돈이 들지만 일단 입주하면 모기지 페이먼트가 없다. 콘도미니엄은 개개인이 소유주로 모기지를 얻어 구입할 수 있다.
텍사스, 매사추세츠 등지에서도 문의 전화가 올 정도로 미국 노인층에는 인기 있는 실비치 레저월드는 40년전에 지어졌기 때문에 현재 기준으로는 조금 규모가 작다. 1베드룸이 790~800 스퀘어 피트, 1 베드룸은 1100 스퀘어피트, 콘도가 1300 스퀘어피트 정도다. 최근 부동산 붐을 타고 이곳도 가격이 많이 올라 현재 1 베드룸은 9만~14만, 2 베드룸과 콘도는 14~28만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40년전에 지어진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 최저가격이고, 그동안 많이 업그레이드된 것이 최고가격대에 분포하는데 작년엔 매물이 없어서 못팔았을 정도로 인기고, 부동산 비수기인 연말연시에도 매매가 꾸준한 편이다.
구매 및 입주는 일단 55세 이상이어야 자격이 있으며, 그 배우자도 45세는 넘어야 한다. 입주자는 최소한 입주 당시에는 건강해서 자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하므로 주치의로부터 건강진단서를 발부 받아 제출해야 한다.
입주가 결정되면 골든 레인 재단 회비로 한번만 입주자 1인 985달러, 2인 1305달러를 내야하고 이후엔 매달 1베드룸은 225달러, 2베드룸은 260달러를 내는데 여기는 보험, 시큐리티, 미니버스 서비스, 오락시설및 정원 관리, 재산세 및 물, 쓰레기등이 모두 들어있다.
코압이 지붕을 포함한 건물 외벽에 관한 수리 및 교환, 집안 내 가전 제품들의 고장 수리 및 교체 또한 모두 책임지므로 자잘한 고장 때문에 속태울 일이 없다. 주차는 가구당 1대씩이 지정돼 있지만 여유있고 4~6가구별로 함께 사용하도록 설계된 세탁장이 하나씩 붙어 있다.
40년전 최초 입주자가 100세가 넘도록 살고 있는 실비치 레저월드의 입주자 평균 연령은 77.9세로 그야말로 노인촌이지만, 박씨나 안씨처럼 소일거리 삼아 일하거나, 풀타임으로 일하러 다니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월요일 아침인데 9홀 골프장이나, 수온 83도의 대형 수영장이나, 각종 기구들이 가득찬 체육관은 운동하는 주민들로 붐볐다. 클럽하우스가 6개에 2500석 규모의 야외극장. 볼링장. 당구장, 탁구대, 암실, 인터넷 설비가 된 도서관, 텃밭등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극단, 브리지 클럽, 워터 에어로빅스 클럽, 당구 클럽, 볼링 클럽, 농부 클럽, 도자기, 무용등 각종 액티비티가 20여가지다.
뿐만 아니라 ‘나잇 오브 콜럼버스’’구세군’’프렌즈 오브 라이브러리’’키와니스’’인베스트먼트 포럼’등 서비스 클럽, 매주 발행되는 32페이지짜리 주간지 ‘골든 레인 뉴스’도 여기서 제작된다. 20여개에 가톨릭과 개신교를 망라한 교회 14개도 단지내에 자리잡고 있다. 외래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의료시설과 약국, 앰뷸런스, 물리치료사 또한 빠지지 않았고, 단지내 미니 버스를 이용하면 자동차 없이 웬만한 곳은 다 다닐 수 있다.
정문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안내를 하는 사람부터 백발이 성성한 레저월드를 돌아보려니 학교를 졸업한 이후 30년 남짓, 직장이 정한 시간의 굴레 속에서 쫓기듯 살며 항상 시간의 여유를 아쉬워했지만 그 언젠가 아무 제한없이 펼쳐질 하루, 한달, 일년을 반듯하게 싸 담을 보자기를 어서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혼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 때 레저월드 같은 곳에 사는 것은 분명 축복일 것이다.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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