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부시 미국대통령의 유명한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이 나온것은 바로 지난해 1월29일 전세계에 중계되었던 TV 연두 국정연설에서였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1년이 흘렀다.
’악의 축’ 발언은 미국에, 그리고 부시에게 무엇을 남겼나.
’악의 축’ 발언은 어쩌면 21세기 세계사에 가장 의미심장한 변화를 몰고올 ‘역사적 발언’이 될지도 모른다.악의 축 발언이후 지난 1년 사이에 세계의 기류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우선 ‘악의 축’ 발언이후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도덕이나 명분 측면에서 지도자적 지위를 급속히 상실해가고 있다.
힘이야 여전히 세계 최고지만 이미 세계에서 ‘타국의 입장은 고려도 않고 힘만 휘두르려고 하는 오만한 나라’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반미감정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이 다른 나라도 아니고 프랑스나 독일, 캐나다등 전통적 우방국가, 그것도 정부 최고위층이나 지식층들 사이에서 급속히 번져가고 있는 점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부시류의 ‘오만’과 ‘명령에 가까운 일방통행적 독단’에 크게 불쾌해하고 있다. 우방이 이 정도이니 다른 나라들은 오죽 하겠는가.
둘째,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돈독히 해야 할 시점에 느닷없이 ‘악의 축’발언을 터뜨림으로써 공조에 균열이 생기게 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라는 초강수를 두게 만들어 ‘북핵사태’같은 또다른 골치거리를 야기시켰다.
셋째, 실체도 이유도 목적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운 이라크전쟁 분위기를 1년이 넘도록 지속함으로써 미국 경제가 침체에 허덕이게 만들었다.
특히 주식시장은 ‘악의 축’ 발언이후 침체에 침체를 거듭하더니 결국 정확히 1년을 맞는 시점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다우지수 8천선이 붕괴돼 이라크전과 관련된 투자자들의 불안이 어떠한지 분명히 드러내 보였다.
이외에 세계 각국의 미국 공관원 및 가족들은 갑자기 돌변한 반미 분위기에 혹시라도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지경이 되었고 바깥이 불안하니 미국인들이 세계여행하기를 꺼린다. 9.11테러이후 비행기 폭발위험을 TV서 지겹도록 본 탓에 대부분의 항공사가 도산직전에 이르고 여행업계의 한파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피해는 그렇다 치고 ‘악의 축’ 발언으로 부시행정부가, 미국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사마 빈 라덴은 오리무중이고 알 카에다는 궤멸되었는지 안되었는지 지금은 조용하고 아프간전은 승리했다지만 국민들의 뇌리속에는 사막에 가까운 황량한 광야에다 초고가 폭탄을 쏟아붓던 모습과 피곤에 찌든 아프간 국민들과 어린이, 노인들의 모습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지금 아프간은 누가 어떻게 무슨 모습으로 통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갑자기 타깃이 이라크로 넘어갔다. 이라크에 대한 전쟁은 이제 돌이킬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세계는... 미국국민은 갈수록, 왜 이라크를 상대로 ‘반드시’ 전쟁을해야만 하는지 회의적인 생각이 늘어가고 있다.
부시는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한데 묶어 ‘악의 축’이라고 두들겼지만 불행하게도 세계의 민심은 그들이 정말 ‘그렇게 악독한’ 국가인지 공감하는데 주저하고 있다. 후세인이나 김정일등 집권층이 미국말 듣지 않고 전근대적이며 폐쇄정치로 국민들을 힘들게 한다는 정도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세계에 ‘악의 축’일 정도로 피해를 주어왔는가에 대해서는 잘 공감이 되지않기 때문이다.
’부시의 수사학(Rhetoric)’에 대해 두고두고 말이 많은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상대를 일방적으로 ‘악의 축’이라고 규정해놓고 대화를 하자면 온전한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미국의 편에 서지 않으면 모두가 적’이라고 공언해 놓으면 미국편에 서고 싶은 사람들도 왠지 비굴해보여 그 쪽에 서고 싶지 않은게 조금이라도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의 상식적 심정이다.우방들이 등을 돌리게 된 계기다.
문제는 미국이, 부시행정부가 세계의 이런 분위기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는데 있다.
사라예보의 총성 한발이 세계1차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처럼 잘못된 수사였던 ‘악의 축’ 하나가 21세기의 국제사회를 기축부터 뒤흔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라크를 친다면 99% 승리하겠지만 이겨도 져도 미국으로서는 엄청난 변화를 직접 감당해야 할 것이다.무력으로 타인을 다스리는 것은 하책중의 하책이며 ‘힘에 의한 지배’는 오래 갈수 없기 때문이다.
부시행정부에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과 자제다.오만한 모습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어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력보다 인(仁)이야말로 최고의 통치 덕목이며 초강대국으로서 겸손을 보일 때 세계의 지도자적 위상과 면모를 명실상부하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선 부시대통령은 좀 웃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미 카터나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존F케네디등 미국의 전임 대통령을 생각하면 그래도 어쩐지 후덕해보이는 웃음이 연상되는데 부시대통령 자신은 물론 럼스펠드 국방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등 부시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면모는 어쩐지 강퍅(剛愎)해 보이며 이 부분도 세계각국의 ‘대미정서’에 마이너스가 되었으면 되었지 도움은 전혀 안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빈<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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