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한인단체가 ‘올해의 인물상’ 대상자를 찾는 과정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았다.
인물상 대상자는 한인 1.5세나 2세들 가운데 지도력이 있거나 한인사회 또는 미국사회에서 탁월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인물, 또는 사회에 귀감이 됨으로써 후세들의 표본이 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막상 대상자를 결정하려다 보니 망설여지는 부분이 적잖았다고 한다.
똑똑한 젊은이는 많은데, 그리고 그들이 곳곳에서 열심히 일들은 하는데 딱히 리더쉽이 있어 상을 줄만한 인물이 없더라는 게 이 단체 측의 설명이다. 앞으로 2세들을 이끌어갈 지도자 감이 이렇듯 우리 사회에 드물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나마 10여 년 전 한인사회에 싹이 터 모습을 드러낸 것이 한인 2세들 모임인 Y-KAN이다. 이들이 그동안 활약하면서 부수적으로 보여준 것 가운데 하나가 1세대와의 사이에 골이 깊다는 사실도 있다.
어느 핸가 이들과 1세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자리가 마련돼 공개적으로 대화를 한 일이 있었다. 이때 1.5세나 2세들의 발언은 거의가 1세들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들뿐이고, 1세와 가급적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를 빚었다.
말하자면 1세들에 대한 거부감과 막연한 반감이 머리 속에 꽉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관념 속에는 1세에서 2세대로 뿌리를 이어간다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한인 젊은이들의 사고의 한 단면이다. 이것은 우리 한인 부모들의 가정교육이 자녀를 돈만 버는 전문 도구로 만들다 보니 생긴 결과가 아닌가 싶다.
어느 작가가 쓴 책을 보면 6명의 한인 1세들이 어디를 가면서 나눈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대화내용을 보면 한인 2세들의 장래가 얼마나 황량한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길을 가던 이들 일행 중 한 명이 "야 한인들 대단해" 하니 침묵을 지키고 걷던 한 한인이 "뭐가?" 하고 반문한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여기만 보쇼, 이 가운데만 해도 벌써 아이들이 의사, 변호사, 회계사가 몇 명이요? K씨네도 그렇고, H씨, J씨네도 그렇지 않소?" 하니 모두들 흐뭇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또 다른 한인이 "여보쇼 당신네
들은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네요"라며 "좋은 학교에 들어가 ‘의사 돼라’ ‘변호사 돼라’ 는 말만 어릴 적부터 노래했지 정작 중요한 코리안 아메리칸 이라는 정체성, 즉 아이덴티티(Identity)를 심어주는 일은 얼마나 했습니까?" 라고 꼬집었다.
그렇다. 실제로 한인부모들은 명문학교에다 ‘사’ 자 붙은 직업을 가진 인물로 자식들을 키우기에 급급했다. 덕분에 해마다 배출되는 한인 변호사와 의사들의 수는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1세들은 2세들에게 ‘뿌리를 내리자’며 온갖 주문을 다 하면서 과연 ‘코리안 아메리칸’에 대한 뿌리 개념은 얼마나 심어주었는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한인사회에서 보면 ‘사’자 붙
은 전문직을 가진 2세들 사이에는 뿌리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별로 많지 않고 지도계층에 있는 이들 거의 다가 미국인처럼 행세하고 있다.
말하자면 피부는 황인종이면서 보이지 않는 속은 백인으로 마치 옐로우 바나나처럼 살고 있는 이들이 많다. 과연 그들이 얼마나 후세와 한인사회를 생각할 것인가. 그들에게서 어떻게 한인사회에 뿌리를 내려갈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인부모들 중에는 자녀가 미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 없이 영어나 잘하고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크게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위 자녀를 잘 길렀다고 하는 한인부모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뿌리에 대한 이슈를 놓고 자녀들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는지 의문이다.
이런 속에서 우리가 장래 훌륭한 리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미국인이 되기가 십상인데 그대로 방치할 경우 저절로 미국인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뿌리교육은 본국이나 왔다 갔다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가정과 사회의 장기적인 노력이 없고서는 곤란하다.
뿌리에서 싹이 나와 가지를 쳐서 잎이 나오고 열매를 맺는 그런 교육이 우선 가정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지 않고서는 이 사회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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