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느와르 날갯짓···첸 카이거 감독 재기
‘붉은 수수밭’ ‘국두’ ‘패왕별희’ 등 중국 5세대 감독인 장이무와 첸 카이거가 만든 대형 서사극, ‘영웅본색’ ‘지존무상’ ‘첩혈쌍웅’ 등 홍콩 느와르. 1980년대 말부터 화려한 꽃을 피우던 중국, 홍콩 영화는 그러나 90년대 후반들며 모두 내리막 길에 들어섰다.
중국 두 감독은 작가주의적 지향이 강해지며 대중과 멀어졌고, 홍콩 영화는 장르 영화가 반복되고 스타들의 할리우드 행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아장커, 왕샤오슈아이 등 중국 6세대 감독이 유럽 영화제의 주목을 받고는 있지만 전세계 상업영화시장에서는 지지부진했다.
그런 중국권 영화가 달라지고 있다. 할리우드 자본과의 합작을 통한 대형 무협물은 물론 중국 자본으로만 만든 불록버스터까지 선보이는 등 회생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선 장이모(張藝謨ㆍ52)와 첸카이거(陳凱歌ㆍ51)가 본격 상업영화 장르로 복귀한 점이 가장 두드러진 변화. 무협영화 ‘영웅’(24일 개봉)에 홍콩 출신 스타,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 경력의 음악 감독, 일본인 촬영 감독 등 일종의 다국적 드림팀으로 출연진과 스태프를 기용했고, 홍콩 에드코 필름과 미국 미라맥스가 합작방식으로 무려 3,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했다.
지난해 12월 20일개봉한 ‘영웅’은 ‘와호장룡’이 11일간 세웠던 1,900만 홍콩 달러의 흥행 기록을 뒤엎으며, 현재 800만명 이상의 중국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지난해 미국으로 진출해 ‘킬링 미 소프틀리’를 발표했다 평단과 관객 모두로부터 비난 받았던 첸 카이거는 심기일전, ‘투게더’(3월 14일 개봉)로 관객을 설레게 하고 있다. 중국의 21세기 생카이 영화사가 2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는 가난속에서도 바이얼리니스트를 키우려는 아버지의 꿈을 그린 ‘최루성’ 드라마.
특히 해외마켓에서의 반응이 뜨겁다. 미국의 문스톤이 해외 판권을 선점한 뒤, 미국 내 배급은 MGM의 자회사인 AU가, 프랑스 판권을 뤽 베송이 사들였다. “아시아권에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게 충격”이라는 뤽 베송의 인터뷰가 전해지며 지난해 10월 밀라노 필름마켓에서 영화를 사려는 업자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일기도 했다.
‘투게더’로 기사회생한 첸 카이거는 리안, 장이모의 뒤를 따라 무협영화도 준비중이다. 두 감독의 영화가 성공을 거두자 중국 광저우(廣州)일보는 “두 감독을 포함, 본토의 영화인들이 외부의 신선한 피를 흡수하고 있다. 중국영화가 시장화를 쫓는 것 외에도 국제화의 길을 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콩 느와르도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홍콩에서 제작된 ‘무간도’(2월 21일 개봉)는 지난해 12월 12일 홍콩서 개봉, 4일만에 1,350만 홍콩달러를 벌어들이며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영웅’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며 홍콩 박스오피스를 석권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두 스타 류더화(劉德華), 량차오웨이(梁朝偉)의 대결과 탄탄한 시나리오, 4,000만 홍콩달러(6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로 홍콩 관객들의 입맛을 자극했다. ‘중화영웅’으로 새로운 홍콩식 무협을 선보인 류웨이장(劉偉强) 감독의 작품.
국제적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배우, 장인정신을 가진 감독, 그러나 중국 영화의 부활을 만든 결정적 요인은 할리우드 돈이다. 리안(李安), 우이선(吳宇森)등을 할리우드로 이적시켜 영화를 촬영해오던 할리우드는 돈만 대고, 스태프와 배우는 현지에서 조달하고, 중국어로 제작하는 ‘로컬화’로 방식을 바꿨다.
이미 ‘와호장룡’으로 크게 재미를 본 콜럼비아는 홍콩의 ‘버츄얼 웨폰’, 대만의 ‘더블 비전’ 등에 잇달아 투자하며 중국어권을 제2의 촬영지로 선택하고 있다. 콜럼비아와 미라맥스의 공세에 다급해진 워너 브러더스 역시 홍콩의 흥행감독 두치펑(杜琪峰)을 스카우트, 중국과 홍콩에서 진청우(金城武) 주연의 ‘턴 레프트, 턴 라이트’의 촬영에 곧 돌입한다.
최근 잇단 영화제 수상, 내수 시장 폭발, 해외 수출 호조 등 한국영화의 만만찮은 기세에도 불구하고 현지화를 통한 세계 시장 공략은 중국이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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