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열린 제6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TV로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 것이 있다.
외화를 통해 너무도 눈에 익숙한 세계 최고 배우들이 상을 받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점이었다.이날,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사랑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재즈 뮤지컬 ‘시카고’(Chicago)에 나온 리처드 기어와 르네 젤웨거는 각각 최우수 남녀 주연배우로 선정되었다.
르네 젤위거는 1980년 ‘크래머 대 크래머’, ‘The Franch Lieutenant’ Woman(1982년), ‘소피의 선택’(1984년) 수상에 이어 골든 글로브상만 이번이 네번째다. 보통 배우들은 한번도 못 탄 상을 처음도 아니고 네 번이나 타면서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허둥지둥 무대로 나가면서 주위 사람들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메릴 스트립은 로스앤젤리스에서 활약중인 신경증적인 시나리오 작가를 그린 영화 ‘각색’(Adaptation)에서 열연하여 조연상 수상자가 되었다.
메릴 스트립은 그 나이면 흥분과 열정이 가라앉아 우아하게 미소지으며 여유 있게 상을 받을만 한데 그녀 역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바삐 무대로 가면서 훤히 파인 드레스 앞자락의 브래지어가 보일까 가슴을 연신 여며가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니콜 키드먼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작품을 그린 ‘세월’(The Hours)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로 분해 여우주연상을 탔다.워낙 시상식 시간이 길어 집안 일을 하면서 TV 앞을 왔다 갔다 하느라 그녀 이름이 불리
는 순간은 놓쳤지만 길게 앞트임이 들어간 물빛 드레스에 역시 늘씬한 다리가 일품인 그녀도 상이라니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이들뿐 아니라 다들 골든 글로브 트로피를 수상하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무대에 올라 할 말을 잊고 “오 마이 갓”을 외치기도 하고 복받쳐 오르는 감격으로 지루한 수상 소감을 줄레줄레 이어가기도 하고 품속에서 미리 준비한 메모를 꺼내 읽기도 했다.워낙 유명한 사람들도 자신을 다시 인정해 주면 저렇게 좋은가? 무대에 서서 박수갈채를 받은 저 재미가 상당한 가봐? 그래서 ‘스타’라고 하겠지?
그런데 말야 저 글썽이는 눈물이, 호들갑스런 저 감격이 진짜일까? 배우라는 직업에 충실하게 연기가 아닐까? 각본에 의해 짜여진 장면은 아닌가 몰라 하는 의혹이 든 것이다.기쁨의 눈물, 슬픔의 눈물, 분노의 눈물, 서러움의 눈물, 한의 눈물 등 여러 종류의 눈물 중이것은 ‘기쁨의 눈물’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이 쓸데없는 정보와 경험을 너무 많이 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뒷면까지 복잡하게 유추한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세상사에 때가 묻었거나 이제는 순진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도 생각해봤다.8
0년대 연말, 지금도 국민 가수란 칭호를 받고있는 남자 가수가 최고 가수상을 연속 수상했었다. 번쩍이는 조명 아래 화려한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앵콜곡을 부르는 그 가수의 눈에서 길고 가는 눈물 자락이 주르륵 양 뺨 위로 흘러내렸다. 사연 많은 그였기에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그 다음날 출근한 편집국 기자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한 동료가 “다 쇼지 뭐. 부러 지어낸 거야.” 어젯밤의 감동이 찬물 세례를 받으며 절반으로 뚝 꺾어졌다. ‘어떻게 그런 말을?’ 그 말을 한 그녀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20대 초반에 내가 들은 가장 영악한 말이었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감격과 눈물이 진짜라고 믿고 싶다. 그렇게 큰상을 받으면 워낙이 유명한 스타일 지라도, 자신이 그 상을 받으리라 언질을 받았을 지라도 새삼 감격할거야 하고 마음을 돌려본다.
세상이 아무리 가짜투성이라도 그 감격조차 가짜라면 무슨 낙으로 사나. 진짜 눈물이라고 믿고싶은 이 마음은 나 자신 기쁨에 젖은 눈물을 흘려보지 않았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혹여 이 글을 읽은 독자가 앞으로 그런 장면에서 감동이 반감된다면 정말 죄송한 일이다.
민병임(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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