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지만 모든 것이 돈으로 측정되는 요즘 세상에선 사람이 죽어서 남기는 것도 돈인 것 같다. 사람은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날 때 자기가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 즉 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긴다. 보통 유언을 통해 재산을 상속할 사람을 지목하지만 유언이 없을 경우에는 배우자와 직
계가족에게 배분상속하는 것이 상속법의 원칙이다.
한평생 동안 열심히 노력하여 번 돈을 죽을 때 자신이 가져갈 수도 없으니 배우자나 자식에게 남겨주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이 아끼던 것을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줌으로써 자신의 애정을 남기게 되고 물려받은 사람은 그로 인해 세상을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족이 없는 사람도 누군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유산을 남긴다.
뉴욕에서는 한 노인이 늘 이용하던 다이너의 한 웨이트레스에게 전재산 50만달러를 남긴 적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개나 고양이에게 유산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유산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상속세를 물어야 한다.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유산의 절반 가량을 상속세로 부과한다. 자신이 번 돈을 고스란히 물려주지 못하고 막대한 금액을 세금으로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세금으로 빼앗기기 보다는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 낫다는 부자들의 생각에서 미국의 기부 문화가 정착됐다.
미국사회를 윤택하게 만든 수많은 자선기관, 박물관과 미술관 등 예술활동, 대학 등 연구기관이 이 기부문화의 소산이며, 유명한 카네기재단과 라커펠러 재단도 그래서 생겨났다.
그런데 2001년 의회를 통과한 상속세 폐지정책에 대해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반대하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상속세 폐지 반대를 위한 청원운동에는 라커펠러가와 루즈벨트가의 후손들과 세계 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의 아버지, 세계적 투자가인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 등이 앞장서고 있다.
조지 소로스는 지난 주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빈부 격차가 심화
되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상속세를 폐지하면 사회건강에 유익하지 않다면서 상속세의 존속을 주장했다. 한국에서 재벌들이 2세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상속세를 포탈하기 위해 갖가지 변칙적 방법을 쓰는 것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재산은 생명과 마찬가지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서 헌법이나 법률로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며 국가라 할지라도 개인의 재산권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특정사회에서 일반 대중의 수준 이상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고 할 때 그것이 오로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룩한 부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어떤 경우는 전쟁 특수로, 또 개발정책이나 복지정책의 확대로, 또는 대중예술과 같은 사회추세의 변화로 큰 돈을 벌 수가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대재벌이나 큰 부자는 개인의 노력 뿐 아니라 사회적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개인이 자기가 사는 동안에는 자기가 번 돈을 소유하고 지출을 통제하겠지만 세상을 떠나면서 재산을 물려줄 때는 사회의 몫을 떼어주어야 옳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빈부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줄여 자본주의 사회의 건강을 유지시켜 줄 수 있다.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미국의 갑부들은 돈을 제대로 벌 줄도 알지만 제대로 쓸 줄도 아는 사람들인 것같다.
지난 2001년 의회를 통과한 상속세 폐지안은 앞으로 수년간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서 2010년에는 완전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상속세를 내지 않게 될 부자들에게서는 ‘우리 미국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겠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가 결국 자본주의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속세의 폐지를 반대하는 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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