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00년 여름에 겪었던 믿을 수 없는 실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박장대소를 하고 웃을 일이지만, 그 당시에 난 너무도 심각했던 일생일대의 위기였습니다.
난 대학교 2학년이었고, 형 두명 모두 미국에 유학을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학을 이용해 한달간 미국 여행을 간적이 있었습니다.
한달간을 아주 즐겁게 보냈지만, 영어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너무나 시달린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시카고에서 KAL로 갈아타려 하는데 비행기가 24시간이 연착 되는 바람에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땐, 거의 이틀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막 자려고 하는순간, 전화가 울렸습니다. 너무도 오랜만인, 절친했던 옛친구의 전화였습니다.
그 친구는 내가 미국에 갔던 사실도 알지 못했고 따라서 지금 돌아와 무척 피곤하다는 사실도 알리가 없었죠.
단지 너무 반가운 마음으로 나오라고 했기에, 난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몸따로 마음 따로인 나는, 강남역으로 가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반갑고 해서 좀마시다 보니, 피곤함에 겹쳐 점점 맛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포장마차에서 소주까지 한잔하고 나니, 이미 나의 모습은 한마리 개였습니다.
술자리를 마치고 전철을 탔는데, 당시 우리집은 가락시장 근처였기 때문에 잠실역에서 버스를 타야했습니다.
술에 이미 이성을 잃은 난, 전철 안을 우리집 안방으로 착각하고 마구 뒹굴었습니다.
반경 3미터 이내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았던 것을 그때는 참 이상하게 느꼈지만,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때에, 어떤 용감한 아저씨가 나를 부축하고 자리에 앉힌 후 인생에 대해서 설교를해 주셨는데, 내용은 지금 기억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에는 참 진지한 태도로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의 손을 부여 잡고 대화를 나누었던걸로 봐서,그분도 많이 맛이 간게 아닐까 합니다.
잠실역에 내려, 롯데월드 벤취에서 난 다시 대자로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어느 아저씨가 깨울 때, 난 빨리 버스를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무버스에 무작정 타고말았습니다.
버스만 타면 집에 갈 수 있을줄 알았습니다.
다시 누군가가 날 깨웠을때, 그곳은 생전 처음보는 으슥한 거리
였고, 주위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 고, 적막한 밤거리는 지난 한달동안 있었던 미국을 연상케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난 착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큰일났다!!! 난 지금 시카고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좌절스러움과, 처량함, 온갖 공포로 뒤죽박죽되어, 터벅, 터벅 걸었습니다.
"역시 미국의 밤거리는 사람도 없구, 차도 없구나... 이제 우리집 가락시장을 찾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지. 명색이 대학을 다닌다는 놈이 집 하 나도 못 찾아간다는건 말이 안되지.."
그때 저쪽에서 동양인 아저씨 한분이 오고있는걸 발견하고, 최대 한 정신을 가다듬었고 아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익쓰큐즈. 웨얼이즈더 카락쉬장?"
아저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가버리는 것 이었습니다.
"에이 XX! 술 먹었더니 영어 X나 안되네?"
한참을 다시 걸었을때 큰길이 나왔습니다. 너무나 반갑게도 택시 한대가 오고있었습니다.
난 이걸 놓치면 정말로 끝이란 생각에, 한 손으로 엄지 손가락을 들고 "헤이 탁씨!!!" 라고 외치며 팔짝팔짝 뛰었습니다.
택시가 서길래 "땡쓰!"
라고 말하며 아저씨를 보는순간, 이동네에는 참 동양인이 많이 사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행선지를 말한다는게 너무 흥분한 탓인지 그만,
"아이 원트 카락쉬장!"
이라고 크게 외쳐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속으로 되게 쪽 팔렸습니다.
아저씨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카락쉬장?"
이라고 되물었습니다.
"참 이 아저씨는 사려 깊게도 틀린 영어에 대해서 뭐라 토달지 않고 새겨들으시는구나."
아마도 나를 교포2세나 뭐 그런 종류인줄 알았나 봅니다. 지금부터 대본 형식으로 하겠습니다.
나 : 에쓰, 카락쉬쟝! 잇이즈 카락마켓! 유 노우?
아저씨 : 예쓰바리. 아이 노우 카락마켓. 이뜨이즈 굳마켓.
나 : 아이 게쓰 유아 베리베리 굳 드라이버!
아저씨 : 땡큐땡큐. 유아 베리베리 굳 게스트.
나 : 유아 웰컴.
아저씨 : 화이 유 고우 카락쉬쟝 투 레이틀리?
잇 이즈 클로우즈드 나우.
나 : 마이 하우스 이즈 니어 너 카락쉬쟝.
아저씨 : 유어 하우쓰 이즈 데어?
나 : 야.
아저씨 : 훼얼 아유 프롬?
나 : 아임 프롬 코리아.
아저씨 : (엄청 놀라며) 두유 스픽 코리안?
나 : 아이 스픽 코리안 베리베리 웰.
아저씨 : 너 한국 사람야?
나 : 아저씨도요? (너무 놀랐다) 반갑습니다.
나 : 훼미리 아파트 살아요! 아저씨는 어디 사셨어요?
아저씨 : 근데 왜 영어해 새꺄! 얼마나 긴장했는줄 알어.
나 : 여기 시카고 아네요?
아저씨 : 너 취했구나?
그때 집앞에 다다랐고, 난 여기가 한국이라는 사실에 너무너무 기뻐서 집까지 팔딱팔딱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지갑을 택시 안에 두고 내린것을 알았고, 많은것을 깨달았습니다.
1.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에 살아야 한다는 것.
2. 술은 적당히 먹어야 한다는것(지금도 그 버릇은 여전히 못 고 치고 있음)
3. 택시 운전사 아저씨한테는 한국말로 해야 한다는것.
4. 카락쉬쟝이 아니라 카락마켓이라는 것.
5. 사람 많은 전철에서 부딪히기 싫을때 뒹굴면,사람들이 피해준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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