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년간 한국에서는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골치거리였다. 정치적 리더의 지역적 연고 때문에 시작된 지역간의 대립은 대선 때 몰표 현상으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차별과 대립을 초래하여 망국병이 되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을 해소하자는 말이 나왔으나 공염불에 그치곤 했다.
그런데 지난번 대선에서는 이 지역대립에 또 하나의 더 큰 대립현상이 나타났다. 젊은세대와 기성세대의 세대간 대립이다. 선거 결과는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승리하고 영남지역에서 우세하고 기성세대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패배한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면 호남과 젊은 세대, 영남과 기성세대를 각각 묶어준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진보와 보수라는 노선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5년간 호남 정권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각 분야에는 영남을 비롯한 비호남세가 우세하며 이들은 기성세대로서 보수층을 형성하고 있다.
반대로 보수층으로 자리잡지 못한 호남 중심의 지역세와 젊은 세대는 개혁을 원하는 진보층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대선에서 진보 세력이 승리했지만 한국에는 아직 두꺼운 보수의 벽이 가로막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개혁 성향에서도 나타나지만 북핵사태로 북미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북미관계를 보는 시각 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고정적 사고에 반대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대북 접근정책을 원하기 때문에 미국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전통적 사고를 존중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을 경계하기 때문에 미국을 우호적으로 생각한다.
이런 차이가 극단화하면 친북, 반미와 반북, 친미로 극명하게 대립할 우려도 나오고 있다.지난해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시청앞에서 벌어진 대규모 촛불시위에서는 “주한미군 철수하라”는 반미구호가 나왔다. 지난 11일에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반미 자제를 요구하는 개신교인 10만명의 시위가 있었다.
북한은 신년사를 통해 남한의 반미감정을 선동했고 지난 11일에는 평양서 100만명이 모인 반미 집회를 열었다. 반미와 반미에 대한 반대가 맞붙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런 대립이 심화되면 해방 후 좌우 대립처럼 심각한 양상으로 번질지도 모른다. 잘못하면 친구 사이의 의리가 깨어지고 집단간의 충돌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고조되면서 미국에서도 반한 분위기가 형성될 기미가 있다. 언론에서는 주한미군을 철수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며 하원은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청문회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재계에서도 한국내의 반미 성향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고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 미국과 한국의 우호관계가 손
상되어 갈등과 대립을 겪게 된다면 이 문제는 재미한인사회에서도 큰 파급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재미한인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재미한인들도 한국과 미국의 편으로 갈라져 첨예하게 대립할 우려마저 있다.
민주국가에서 진보와 보수의 성향은 국가 목표와 국민복리를 달성하는 방법상의 차이로 얼마든지 양립하면서 상호 보완할 수 있는 관계이다. 서구 여러 나라에서 선거를 통해 진보, 보수정당의 정권교체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가적 일체감이나 국민적 화합을 저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한문제가 걸려있는 한국에서는 이 갈등이 심각한 국론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국민의 에너지와 국력을 낭비시키고 잘못하면 나라를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남남갈등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남남갈등을 도외시한 채 남북관계만 추구한다면 소뿔을 고치려다 소를 잡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노무현 새 대통령이 5년 후 성공한 대통령이 되느냐, 또는 실패한 대통령이 되느냐도 이 갈등을 얼마나 잘 해소하여 국민을 통합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영(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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