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면 어김없이 화장실에가 볼일을 보고 나온 남편은 외과에 다녀왔다고 말하곤 한다. 아마 외과 병원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나보다 하고 얼핏 짐작할 수도 있으나 그 깊은 뜻은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두달전쯤 아침일찍 노인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계시던 시어머님께서 방에서 넘어져 오른쪽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정신없이 뛰어가 보니 어머님은 이웃 할머니들의 부축을 받아 변기에 겨우 앉아 계셨으나 침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911을 불러 응급실로 달려간 우리 부부는 어머님의 X-Ray결과를 기다리느라 여러시간 걱정과 초조속에서 보냈다. 정밀검사까지 마친 백인 의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참말로 다행입니다. 처음에 염려했던 것처럼 다리뼈가 부리진 것이 아니군요.” 라고 말했다.
우리는 올해 88세이신 어머님께서 다리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감사했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도 잠시뿐, 저녁8시경 한국인 정형외과 전문의사가 집으로 전화해 본인이 어머님의 X-Ray를 검토한 결과 어머님의 다리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게다가 부러진 부위가 저절로 붙는 부위가 아니어서 꼭 수술을 해야 회복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수술하고 걷는 연습을 하면 시간은 걸리지만 옛날처럼 다시 잘 걸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수술하지 않을경우 심한 통증을 수반하고 등에는 욕창이 생길뿐만 아니라 돌아가실 때까지 진통제를 계속 복용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으니 수술은 꼭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던 나는 머리가 띵해왔다. 몇 시간전 응급실에서 만났던 의사는 뼈에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정형외과 전문의가 검사한 결과는 이상이 있다고 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님은 살이라고는 거의 없고 오직 가죽과 뼈만 남아있어 문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앙상한 체격이시다. 사실 수술이라는 것이 젊은 사람에게도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것인데 여러 가지 연약한 조건뿐인 어머니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술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심각한 문제로 밤새도록 걱정하던 가족들은 다음날 의논을 거듭한 끝에 수술 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당사자인 어머님도 수술은 절대 반대하셨다.
다음날 병원에 누워계시는 어머님을 방문하여 근심스러운 마음으로 다리의 통증이 얼마나 심하신가를 물었다. 그러나 어머님은 의외로 아프지 않다고 하시면서 부러진 것 같지가 않다고 오른쪽 다리를 번쩍 번쩍 들어올리시는 것이 아닌가? 밤새도록 걱정했던 문제가 풀리면서 안도의 숨을 쉬기는 했지만 하루 전 정형외과 의사의 가슴철렁했던 전화를 기억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며칠이 지나고 어머님은 우리 집으로 퇴원 하셨다. 다리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근력이 약해 누워만 계시면서 음식도 거의 못 잡수시고 하루에 겨우 죽 몇 숟갈과 영양우유를 몇 모금 마실 정도였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이번에는 항문이 너무나 아프다고 호소 하시면서 화장실도 혼자 못가셨다. 일을 다니면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던 나는 남편과 상의하여 어머님을 양로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우선 홈닥터를 찾아가 수속을 밟았다. 홈닥터는 어머님의 항문을 유심히 보더니 “안에 뭔가가 들어있습니다. 외과로 가셔야 겠습니다.”했다. 즉 대장에 이상이 있다는 얘기였다. 우리부부는 어머님을 휠체어에 태우고 다시 난감한 심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식사량이 유독히 줄었고 따라서 체중도 많이 줄었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같았다. 증세가 암환자와 매우 흡사해 다시한번 우리 가족은 걱정에 휩싸였다. 또한 한국에있는 가족들에게 전화하여 어머님의 환후가 매우 심각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 다음날 오후 3시15분 외과 의사를 보러갔다. 뼈밖에 없어 의자에 앉아있는 것 조차도 괴로운 표정을 지으시는 어머님은 차례를 기다리다 곧 숨이 넘어가실 듯한 모습이었다. 외과 의사는 어머님을 침대 위에 누이시더니 항문검사를 했다. “별거 아니네요” 하면서 손을 집어넣어 주먹만한 크기의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는 두덩이의 변을 끄집어내면서 심한 변비증세라고 말했다. 아니 그럼, 어머님의 항문을 괴롭혔던 것이 겨우 두덩이의 변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변을 끄집어 내는 것이 내과 의사에게는 불가능 했단 말인가? 두어 달 동안 이어졌던 어머님의 진료 수난은 다행히 여기서 끝났고 지금은 회복의 현저한 차도를 보이며 양로병원에 잘 계신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 나는 정형외과 의사에게 어머님의 다리뼈가 부러지지 않았다고 전화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술하려고 했던 부위가 어느곳이었는지 증명해 보라고 말했다. 정말 이것은 오진이 아니었다고 말 할수 있을까? 사실 어머님께서 70세 중반이나 80 초반만 됐어도 우리는 수술을 감행했을 것이다. 남은 여생을 통증을 안고 살아 가시게 할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정형외과 전문의는 우리가 듣고싶은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엉뚱한 자기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 중 한가지는 어머님의 차트를 보니 보험이 없는 것 같아서 무료로 시술해 줄 계획이었다는등 질문의 핵심과는 거리가 먼 궁색한 답변이었다. 그 병원은 보험없이는 받아주지도 않는 병원이었던 것도 의사가 몰랐다면 그는 더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 의사가 아닌가!
부러지지 않은 뼈를 부러졌다고 수술해야한다고 겁을 주던 정형외과 의사와 대변이 들어있는 대장을 제대로 점검해보지 않고 외과로 보낸 내과 의사 때문에 우리부부는 혼비백산 한달 여를 보내야 했다. 의사의 말 한마디는 그 사람의 생사를 가름한다. 의사가 되면 필히 하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과연 형식뿐이란 말인가? 이 일 후로 남편과 나는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고 나오면 외과병원에 다녀 왔다고 한다. 우리는 매일 하루에 한 두 번씩 외과? 를 찾아가고 외과의사는 수술 없이도 우리들의 문제를 기분좋게 해결해 준다.
이학신
약 력
▲ 재미수필가협회 회원
▲ 순수문학 수필 당선
▲ 캐나다 뱅쿠버 문인협회공모 수필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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