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게 아니라 행복감에 취했다. 주인공은 장서희(31). 더 이상 수식어가 필요 없을 만큼 그는 행복하다. 아역 배우로 시작해 20여년 동안 그는 만년 조연이었다.
그러다 ‘주연’으로 화려한 비상을 했다. 그가 쏟아낸 말은 대부분 지금까지의 ‘서러움’에 관한 것이었다. 때론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며 그는 설움을 토해냈다. 그러면서도 이내 ‘나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이게 꿈이라고 할 정도로.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장서희는 자리에 앉자마자 “저 5관왕이라고 하지만 방송사에서 준 건 3개였어요. 나머진 네티즌과 기자들이 준 상이니 방송사에서 조절할 수 없는 거잖아요”라며 항변부터 했다.
그가 지난 연말 MBC 방송대상 시상식에서 5개 부문의 상을 독차지하자 ‘너무했다. MBC에 그렇게 사람이 없느냐’는 비난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건 신경 쓰지 않아요. 선배와 동료들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 보내준 박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라며 위축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대상을 받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게 뭐냐고 물었다. “방송사 화장실에서 울었던 거요.” 하필이면 방송사 화장실?
“늘 대본을 받아보면 얄미운 조역이거나, 간간이 주연급으로 캐스팅 후보에 올랐다 PD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다 화장실에 가서 울었어요. 집에서는 차마 울 수 없었죠. 부모님께 미안해서….”
작년 MBC 주말극 <그 여자네 집> 촬영 도중 임성한 작가가 “장서희 머리 자르지 말아라고 전해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살사 댄스(경희대 무용과 출신인 그는 원래 춤을 꽤 잘 춘다)와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춤과 드럼을 배우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어요. 막상 드라마를 시작할 때쯤 되면 이번에도 결국 다른 이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하고. 임 작가가 날 주인공으로 놓고 일일극을 쓴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부분의 PD들이 ‘과연’하며 의심했어요. 심한 경우엔 비아냥의 눈초리까지 보냈구요. 그런 반응들을 보며 더욱 이를 악물었죠.”
감기 때문에, 그리고 연일 이어진 축하연과 촬영 때문에 몸이 지쳐 있어 술을 못하겠다더니 술이 센 편인 기자와 보조를 맞췄다.
그는 술잔을 놓으며 “시작하기 전 얼마나 울었는지 아세요? 주인공이 장서희라니까 웬만한 주연급 남자배우들이 출연을 거절하더래요. 솔직히 이렇게 되니까 저 안된다고 했던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한방 먹인 것 같아 기분 좋아요”라며 마음에 담아둔 말을 했다.
#조연이었기에 많이 배웠다
“주인공이 돼보니 신경쓰이는 게 많더라”며 웃었다. 그것도 조연 생활 하면서 많이 터득했다고 한다. “저 대부분 주인공 친구로 나왔잖아요. 주연배우와 늘 붙어 있었죠. 스타들을 보면서 ‘아, 이래서 이 사람은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혹은 ‘이런 점이 저 사람을 있게 했구나’ 등을 몸으로 느꼈어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나 해야 할 일도 많이 배웠죠.”
그러면서 그는 <불꽃>과 <그 여자네 집>에서 만난 차인표를 참 좋은 배우라고 느꼈단다. “이 말하면 우습지만 ‘결혼한다면 저런 사람하고 해야지’라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전년도 수상자였던 차인표 씨가 제게 대상을 줘 기쁨이 두배였죠”라며 빙긋 웃었다.
지난 5일이 그의 생일이었다. 그날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여자였는지 자랑하고 싶어했다. “그날 서울 힐튼호텔에서 김성택 씨와 결혼식 장면을 찍었어요. 감독님과 스태프, 선배들이 저 몰래 깜짝 파티를 준비했더라구요. 호텔 측에 부탁해 여러 장치도 해놓았구요. 그날 촬영이 일찍 끝났던 김용림 선배, (이)재은이 등이 모두 와서 절 축하해줬어요. 그날도 얼마나 울었는대요.”
요즘은 웃다가 울다가, 정신없이 보내는 듯 했다.
연기 생활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느냐고 물었다. “99년도”라고 딱 부러진 답을 했다. “늘 얄미운 역, 밉살스러운 역이 들어왔어요. 연기를 다시 못하는 경우가 오더라도 쉬자고 했죠. 그 때가 제일 불안하고, 견디기 힘들었어요.”
인고(?)의 시간을 보내자 ‘드디어’ 2000년 1월 3일 <불꽃>에서 이영애 친구로 캐스팅됐다. 여전히 주인공 친구였지만 스타일이 달랐다. 털털하고 중성적이면서도 친구를 끝까지 보살펴주는, 딱 그가 바란 조역이었다. 이후 이상하게 잘 풀렸단다.
개인생활에 대해 묻자 “얼마 전까지도 엄마가 매니저였어요. 그 만큼 사생활이 없었다는 뜻이죠. 요즘은 집에 가서 2~3시간 눈 붙이는 게 전부”라며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저 20년 동안 방송사가 제 직장이었거든요”라며 씩 웃으며.
“목표를 이룬 것 같아 행복하지만, 이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짓누르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는 “결코 자만하지 않고 연기에 더욱 충실할게요”라는 다짐으로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김가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