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 대통령 선거를 보고 어느 외신은 한국 민주주의가 크게 성장했다고 전했다. 특히 낙선한 당에서 자신들의 패인이 네거티브 캠페인이었다고 자체 분석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나 역시 이제는 한국의 정치문화도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희망 감이 생겼다. 사실 나는 한국의 장래가 매우 밝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내가 한국의 앞날에 자신감이 생긴 것은 바로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작년 이 맘때 나는 대학원 시절 은사인 로버트 그레이브즈 박사와 함께 서울에 갔었다. 일본은 여러 번 방문했지만 한국은 처음이라며 약간은 긴장하신 듯한 선생님을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의 연극학과 과장으로 계시는 선생님은 시카고에서 출발하셨고 나는 LA에서 떠났는데 용케 도착시간이 비슷했다. 몇 년 전 한국 현대 극작가 오태석씨의 연극집을 번역 출판하는 일을 함께 작업하면서 졸업한 뒤에 오히려 더 가까워진 내 아버지 같은 스승이시다.
동양 연극사를 가르치다 보면 자료가 부족한 한국 연극은 자연히 중국이나 일본 연극에 밀려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는데, 오태석 연극집의 영문 출판은 학문적으로 의의가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해서 작년 12월에는 한국문학 번역원에서 주는 상을 받게 되어 수상식 참석차 선생님과 함께 서울에 갔던 것이다.
인천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에서 그레이브즈 박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넓고 깨끗하고 새로운 길을 이렇게 막히지 않고 오랫동안 달려보기는 처음이라며 감탄하셨다. 선생님은 서울에 계시는 동안 줄곧 서울과 한국문화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착한 다음 날 선생님을 모시고 경복궁에 갔었다. 복원 공사가 진행중인 경복궁에는 한국 역사와 복원 공사 개요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영어로 잘 기술되어 있었다. 경복궁 마당을 가로질러 50대로 보이는 중년부인이 개량 한복을 입고 지나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한국 여인은 참 아름답다. 한복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한국 사람들은 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어떻게 옷을 입으면 한국 여자들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알아낸 민족인 것 같다”며 찬탄을 금하지 못하셨다.
박물관에서 한국음식전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다른 학자들과 만나 인사동에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낡은 한옥을 살린 전통 음식점에서 점심을 마치고 거리를 걸었다. 수상식과 기자회견등 공식 일정이 끝난 다음 날 초저녁에는 택시를 타고 개발이 덜 된 변두리를 돌았는데 서울은 어디를 가도 가게나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레이브즈 박사는 서울을 떠나기 전 날 이런 말씀을 하였다. “한국은 이제 고난의 역사가 끝나고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를 맞이한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물으니,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표정에서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다”라고 의외로 간단한 답을 주셨다.
사실 그때 내 주변의 한국 사람들은 걱정이 많고 비관적이었다. 한국은 지금 경제가 위급한 상황이고 제2의 IMF가 올지도 모른다는 둥, 물가는 비싸고 교육환경은 발전할 기미가 없으니 살기 어려운 나라라는 것이 전반적인 불평의 골자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레이브즈 박사의 밝고 희망에 찬 관찰이 조금 낯설기도 하면서 어떻게 보면 신선하게 들리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 후로 일년을 지내면서 나의 스승의 직관적인 관찰이 옳았다고 느꼈던 큰 사건들을 여러번 목격했다. 월드컵 16강을 꿈꾸던 국민들에게 4강의 신화를 안겨 주었던 한국의 젊은이들이며, 얼마전 미군 장갑차에 무참히 숨진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대해 질서정연하고 절제된 시위를 해서 한국인의 권리를 힘있게 주장했던 일들을 통해, 과연 한국의 앞날은 밝고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한국이 이제 긴 고난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롭고 위대한 시대를 만들어가기를 소망한다. 아마도 이것은 내 개인적인 바램이라기 보다는 미국 동포사회 전체가 바라는 염원일 것으로 믿는다.
김아정 칼스테이트 노스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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