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deflation)은 시간을 두고 물가 전반이 내리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풍작이 들었다거나, 갑자기 물건의 양이 쏟아진 결과 임시로 어느 물건값이 내렸다고 디플레가 생겼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컴퓨터의 예에서처럼 기술의 진보로 매년 더 좋아진 성능의 모델이 나와도 값은 내리는 등 한 두 가지 물건값이 내린 일을 두고 디플레 조짐 운운하는 것도 과장이다.
미국 경제 사상 가장 심하게 디플레를 경험했던 시기는 경제 대 공황기였던 1929~1935년 기간이다. 6년에 걸쳐 20%나 물가하락이 있었는데 그 때 주 요인은 극심한 수요부족 때문이었다. 지난 40년 동안은 주로 디플레 우려보다는 인플레가 두통거리였으며 특히 1980년대 초기에는 고질적인 두 자리 수 물가 인상 율로 인해서 20%에 달하는 고금리와 그 후유증으로 격심한 불황까지 겪었다. 따라서 최근 부쩍 그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디플레이션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이기까지 하다. 1966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연평균 5.4%씩 올랐으나 1950년부터 1965년 사이에는 연 평균 물가상승률이 1.8%에 불과했었다.
많은 경험을 통해서 인플레이션 악몽과 그 나쁜 점은 훤히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인플레이션과 정반대 현상인 물가하락은 소비자에게 좋은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한 정답은 물가하락 현상이 어떤 요인에 의하여 발생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렸다. 만약 디플레 현상이 생산성 증가 덕분에 생긴 배당이라면 물론 반길 일이다. 기업의 효율성 증가에 따른 결과라면 제품 가격은 내렸지만 기업 이윤은 늘어날 것이고 초과 이윤이 재투자로 연결되면 경제성장의 촉진제가 된다. 그 뿐만 아니라 효율성 증대의 과일이 고용원 임금인상으로도 나타나게 될 것이고 이는 직원들의 생활향상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이 디플레이션을 인플레이션만큼이나 무서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많은 경우 디플레이션은 경제가 심각한 불균형에 빠졌을 때 그 증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현재 우려되고 있는 디플레 가능성은 그 원인이 전 세계적으로 불경기에 따른 수요 약화가 신기술 도입에 의한 공급 과잉에 미치지 못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걱정 때문인 것이다. 초과 공급시설은 투자를 억제하며 주식시장 침체는 소비를 견제하게 될 것이다. 이때 물가는 내리고 수급 불균형은 심화된다.
우리가 쓰고 있는 일용품 가운데에서도 눈에 띄게 물가가 내린 상품들을 쉽게 손꼽을 수 있다. 컴퓨터는 지난 한해만도 30%이상 가격이 내렸으며 TV를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 값도 10% 이상 하락했다. 의류와 가구의 가격도 3%가량 떨어졌다. 지난 해 동안에 가격이 오른 제품으로는 물품 세 인상 탓으로 가격이 오른 담배, 술 그리고 의료부문과 제약을 들 수 있다. 서비스 분야와 대학 등록금 인상도 여기서 뺄 수 없다.
디플레이션이 생기면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가? 우선 빚을 많이 진 사람이나 기업은 대단히 불리해 진다. 예를 들면 화폐가치가 떨어질 것(인플레이션 현상)으로 기대했거나 판매가 늘어날 것을 예측하고 은행에서 대부를 받았는데 예상이 빗나가 그 반대 현상이 발생했을 때 원리금 상환 문제로 곤경에 처하게 됨은 당연하다. 소비는 줄고 기업은 고용과 투자를 줄이게 될 것이다. 이자율은 명목 이자율과 실질 이자율(인플레를 감안한 후의 이자율)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기업과 가계에 중요한 것은 실질 이자율이다. 미국의 현행단기 이자율은 1.25%(명목)이나 물가 상승률이 1%라면 실질 이자율은 0.25% 밖에 안되지만 물가가 1%씩 내린다면 실질 이자율은 2.25%가 되어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
두 번째 영향은 금융정책을 집행하는 중앙은행의 운신 폭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이 물가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자율을 아무리 낮추고 싶더라도 0%이하로는 내릴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물가가 2% 떨어진다면 0% 이자율마저도 너무 높은 수준이라 효율적인 경기 진작 정책을 쓸 수가 없는 일본적 현상을 맞을 수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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