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 1년여의 세월이 지나면서 세계는 엄청나게 변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숨어있던 알 카에다 테러 조직이 와해되고 그들을 비호했던 탈레반 정권이 무너졌다.
미국은 나아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는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반 테러 전략에 많은 나라들이 원론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년 간 또 다른 세계적 움직임은 반미주의 확산이다. 미국이 군대를 동원, 반 테러 전쟁을 확대할수록 미국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수 천명의 시민이 죽은 비극을 당했기 때문에 테러 세력을 소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지나치게 무력을 사용하고 자신의 나라의 이해를 무시한다는 생각하고 있다.
9.11 이후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왜 그들은 미국을 싫어하나’라는 것이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최근 퓨 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7~10월에 외국인 3만8,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조사 가능한 27개국 중 22개 국가에서 최근 2년 사이에 반미 정서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통적인 우방인 한국에서도 미국에 호의적인 응답이 53%로 2년 전보다 5% 포인트 낮아졌다.
그러면 미국이 외국에서 미움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연간 국방비는 미국 이외의 전 세계 연간 국방비를 합친 것보다 많고 미국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유가증권의 시가총액이 미국 이외의 세계 유가증권 총량과 비슷하다.
과거에 파리가 문화와 유행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뉴욕이 그 자리를 빼앗았다. 미국은 확실하게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세계 최강대국이고 세계를 압도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세계적인 반미주의 확산이 초강대국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자국의 이해를 달성하기 위해 압도적인 힘을 일방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 국가의 이해를 누르고 그 나라 사람들을 무시한 결과로 반미 기류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공산권이 와해되고 미국이 이른바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로 등장했다.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향유한 미국의 절대적 우위는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그 초입에 당한 9.11 테러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1990년대 10년 간의 미국은 ‘부드러운 수퍼파워’라면 테러 이후의 미국은 ‘성난 수퍼파워’, 또는 ‘강경한 수퍼파워’라고 규정할 수 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유럽에 10만, 중동지역에 2만5,000, 한국에 3만7,000, 일본에 2만 등 전 세계 600여 개 기지에 20만 명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대영제국이 전성기에 55개 대대, 4만 명의 군대로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을 유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군사력을 배치하고 군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외 정책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미국의 힘이 과거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보다 강하지만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군사력 사용을 우선할 경우 상대방 국가와 주변 국가로부터 엄청난 저항에 부딪친다는 사실이다.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직후에 “미국은 아주 위험한 본능을 강화하고 있다”며 “미국이 군사력에 의존, 대외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우방을 선택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걱정한 바 있다.
최근 한국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 반미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법체계와 사고방식이 한국과 다르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미국이 사건 초기부터 한국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한국인들을 자극했다.
또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의 제한을 요구하며 북한을 압박하는 것도 민족 화해를 원하는 한국 사람들의 소망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의 것을 좋아하고 미국과 우호관계를 원하지만, 오랜 역사과정에서 강한 민족적 자존심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미국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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