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북한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99년 7월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황해도 해주에 있는 한 병원에 동료 독일 의사들과 함께 파견됐다. 우리가 돌봐야 할 환자는 제철소에서 일하던 근로자로 전신에 70% 가까이 중화상을 입고 있었다. 해주 병원장은 여성이었는데 이 환자를 보자 자기 피부를 잘라 이식 수술을 하고 있었다.
나는 병원장이 자기 살점을 떼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처음 봤다. 이 병원장 온몸은 과거에도 10여 차례 피부를 잘라낸 적이 있어 누더기처럼 돼 있었다. 나는 내 피부도 환자 치료에 바치기로 했다. 북한 병원은 땔감이 없어 겨울에는 실내 온도가 영하 15도까지 내려가고 약품도 마취제도 없어 칼로 그냥 맨살을 도려내야 한다.
북한의 언론 매체들은 서양 사람이 피부를 도네이션 하는 현장을 보도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그 바람에 나는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북한 정부가 주는 최고 훈장인 ‘인민 우정 훈장’도 받았고 북한 전역을 감시원 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특별 통행증도 받았다. 이 환자는 여러 의사들의 노력으로 완쾌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북한에는 3개의 세계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됐다. 하나는 기아와 추위에 시달리는 대다수 주민의 생활이다. 두 번째는 서방 상류층을 뺨치는 북한 당과 군 간부들의 세계다. 이들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상점에는 국제 사회가 기부한 온갖 약품과 옷, 식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은 최신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있다.
세 번째는 북한 체제에 반대하거나 탈북했다 잡혀온 사람들, 기독교도들이 수용되는 강제수용소다. 이곳에 잡혀갔다 온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참혹한 일들이 여기서 일어나고 있다.
내가 2000년 12월 북한에서 추방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평양 인근 고속도로에서 고문당하다 사망한 북한군 병사의 시체를 보면서부터다. 처음에는 그를 구해보려고 차를 세웠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시신을 살펴본 결과 온몸에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를 사진 찍으려 하자 운전 기사가 필름을 빼앗았고 그 후 얼마 뒤 추방됐다.
나는 1년 반 동안 7만 km를 차를 몰고 다니며 북한 전역을 누볐다. 그러나 그 동안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온갖 구호물자는 평양의 군당 간부 전용 상점에 진열되거나 다시 해외로 빠져나와 외화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 국제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북한에 원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에 무기 사찰단을 보내듯 식량 사찰단을 평양에 보내는 것이다. 지금 식으로 백날 해봐야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나하고 친한 동독 출신 의사가 지금도 평양에서 자원 봉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 평양 분위기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동베를린과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다. 돈이 있는 고관들은 외화와 자식들을 해외에 빼돌리기 바쁘고 김정일 체제에 희망을 걸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근 양빈 구속이 말해주듯 중국도 이제 북한을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는다. 중국도 러시아도 핵으로 무장된 북한보다는 한국과의 철도 부설 등 자기 나라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체제가 들어서기를 원한다. 김정일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호네커처럼 조용히 북한을 떠나거나 차우세스쿠처럼 처형되거나 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
한국인들은 통일을 두려워한다. 독일도 지금까지 통일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통일을 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국민들은 독일의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한국의 하이텍과 자본이 북한의 싼 인력과 결합한다면 한국 경제는 제2의 도약을 맞을 수도 있다. 북한 주민들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한 국민들이 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노베르트 폴러첸 탈북자 돕기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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