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漸入佳境), 설상가상(雪上加霜), 무소불위(無所不爲), 목불인견(目不忍見). 2001년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 후보로 오른 말들이다. 모두 불합격이다. 결국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 한국의 2001년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채택됐다.
조폭에서 시작돼 온갖 게이트로 진 한 해였기 때문에 다사다난(多事多難) 정도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어 이 사자성어가 선택됐다는 보도였다. 일본에서는 ‘전’(戰)자가 2001년의 단어로 선택됐다. 9.11 테러 발생과 함께 전 지구촌에 전운이 휩싸여 선택됐던 것.
한국의 2002년을 정리하는 한자어로는 그러면 어떤 말이 적합할까. 아무래도 ‘몽’(夢)자가 아닐까 싶다. 그 이유는….
‘꿈(夢)☆은 이루어졌다’-. 신화가 탄생했다. 월드컵 4강 진출이다. 붉은 물결이 전국을 덮었다. 한반도는 깊은 꿈속에 빠져들었다. 그렇다. 한 여름밤의 꿈이었는지 모른다. 꿈 몽(夢)자가 올해의 한자어가 되어야 할 첫 번째 이유다.
‘몽’(夢)자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정몽준이냐, 노무현이냐’-. 신문은 이 둘을 놓고 매일 저울질이다. 야무진 꿈을 펼쳐보여서다.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상적 발상은 아닌 것 같다. 대권 집착형 발열성 이상증세라고 할까 하여간 그런 증상 같다. 너무나 판이한 배경의 두 사람이다. 재벌 2세와 노동운동출신 변호사. 전혀 번지수가 다른 이 둘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겠데서 하는 말이다.
축구가 변수가 되고 그걸 통해 대권마저 바라본다. 백일몽(白日夢)같은 이야기인데 그게 현실이 됐다. 꿈 몽(夢)자가 올해의 화두가 되어야 할 두 번째 이유다. 백일몽도 꿈은 꿈이기에.
장자(莊子)가 그랬다던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긴 꿈이다. 큰 꿈이다. 미로를 헤매고, 또 헤매는 그런 꿈이다. 뭐라고 할까. 대몽(大夢). 아니, 미몽(迷夢)이다.
‘햇볕’의 미몽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초현실적 대권구도도 ‘햇볕의 미몽’속에 잉태된 작품이다. ‘햇볕’은 어떻게든 유지되어야 한다는 미망(迷妄)에 사로 잡혀 정치판을 짜다가 결과가 되어진 돌연변이성 현상인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그 미몽의 끝이 악몽(惡夢)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는 가위눌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햇볕의 미몽에서 못벗어나고 있다. 올해의 화두가 정녕 꿈 몽(夢)자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제 자명해졌다. 4강신화의 환상도, 대권 백일몽도, 햇볕의 미몽도, 또 핵의 악몽도 모두 꿈은 꿈이기 때문이다.
“북한문제 말인데 이 점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김정일을 몹시 싫어한다. 국민을 굶겨죽이는 그런 자다. 구역질이 난다.” “김정일 체제가 너무 빨리 무너지면 우리가 져야할 재정적 부담이 크다는 말을 한다. 그러니 서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 말에 찬동할 수없다. 자유라는 측면에서, 고통받는 자를 해방시킨다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할 것이다.”
조지 W 부시가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인터뷰에서 토로한 북한관(우드워드의 저서 ‘전쟁중인 부시’의 일부 내용)의 일부다. 8월20일에 한 인터뷰인데 그 내용이 최근 보도됐다. 한국의 정치권이 여전히 ‘햇볕의 미몽’에, 또 ‘대권 백일몽’에 헤매고 있는 타이밍에 나온 보도다.
온통 이라크 관련 보도다. 그 가운데에도 심심치 않게 한국관련 보도가 나온다. 아주 불길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만일의 경우, 만일의 경우지만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에 대해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시그널이다.
“평양에 새 정권이 들어서야 핵문제가 해결된다.” “김정일 체제의 전복만이 해결방안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국과의 공개적 관계결렬을 피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11월분 중유공급만 허용했다.” “중유공급 및 핵기술제공 중단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북한주민을 극악무도한 체제로부터 해방시키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김정일 체제는 구제불능이라는 진단이다. 북한문제를 그러므로 대화로 해결한다는 건 허황된 꿈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체제의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파의 시각도 다를 게 없다. ‘미친 체제 북한에게 남은 옵션은 경착륙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문제는 경착륙시 있을 피해를 얼마나 최소화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
이 보도들은 무슨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을까. 한국의 대선을 앞둔 교묘한 내정 간섭일까. 꿈에서 깨어나라는 소리일까. 각자 판단할 문제같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한 것 같다. ‘햇볕은 한바탕의 꿈, 그 오랜 미몽’은 접고 악몽과 같은 엄혹한 현실에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다. 꿈에서 깨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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