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지(mortgage)는 원래 ‘목숨을 건 약속’이란 뜻의 고대 프랑스어가 어원이다. 단어 안에 ‘죽음’을 의미하는 ‘mort’가 들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어원은 잊혀진지 오래다. 긴 주택 호황과 함께 모기지를 끌어안는 미국인은 급증 일로다. 미국 내 모기지 총액은 지난 4년 새 50%가 뛰어 현재 5조 7,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모기지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집 값이 계속 오르자 (가주 등 일부 지역은 100%) ‘지금 집을 못사면 평생 못산다’는 초조감에 쫓긴 첫 주택 구입자들이 무리해서라도 집을 장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처럼 20%씩 다운하고 집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고 5~3%, 혹은 전혀 다운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모기지 종류도 전통적인 15년이나 30년 고정보다 몇 년간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프로그램 등 ‘창조적 파이낸싱’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인들의 주택 구입률은 68%대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택 가격은 계속 올랐음에도 집 값에서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equity)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1994년 미국 주택 소유자들의 평균 에퀴티는 45%였다. 그러던 것이 1995년에는 40%, 1996년에는 35% 하는 식으로 계속 줄어 2001년에는 15%까지 낮아졌다.
에퀴티를 까먹는 주범은 재융자다. 30년 래 최저의 낮은 금리와 함께 재융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그 바람에 대기업들은 감원 선풍으로 전전긍긍 하지만 재융자 비즈니스만은 일손이 딸려 대규모 인력 충원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재융자를 한 다음 집 값 오른 만큼의 에퀴티를 빼 다 쓰는 바람에 모기지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는 것 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융자를 통해 흘러나온 돈 때문에 지난 1년 간 미국 경기가 그래도 이나마 돌아갔다고 앨런 그린스팬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도 의회 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집이 돼지 저금통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이는 주택 소유자의 재정을 위협하는 행위다. 재융자 때 빼낸 돈의 30%는 크레딧 카드 등 개인 부채를 갚는데 쓴 것으로 나타났다. 고리대금 같은 크레딧 카드 빚을 이자가 싼 모기지로 대체했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무담보 부채를 ‘목숨을 건 부채’로 바꿨음을 기억해야 한다.
유례 없는 주택 호경기에도 불구, 주택 차압률과 월 페이먼트 미납률 또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수입에 비해 무리하게 허겁지겁 집을 산 사람,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페이먼트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올해 개인 파산 또한 사상 최고다. 그 중에서 특기할 사항은 챕터 13을 부르는 사람이 단연 늘었다는 점이다. 챕터 13은 작년에 비해 8% 증가한 반면 챕터 7은 오히려 소폭 줄었다. 챕터 7은 거의 모든 빚을 털 수 있지만 집도 빼앗기게 된다. 반면 챕터 13은 채무 상환을 연기하는 것이지만 집을 지킬 수 있다.
주택 소유자 중 파산을 부르는 사람은 5년 전 45만에서 작년 75만으로 급증 세를 보이고 있다. “주택 소유자들의 파산 물결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게 이 조사를 한 엘리자벳 워런 하버드 법대 교수의 생각이다.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실업자는 당분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거기다 미국인들의 주택 능력 지수는 수십 년 래 최저 수준이다. 또 FRB의 단기 금리 인하에도 불구, 모기지 금리는 오히려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내년 집 값 하락을 점치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2000년 3월 나스닥이 5,000을 기록했을 때 하이텍 주가가 사상 최악의 폭락을 겪을 것을 예견한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살던 집을 빼앗기는 것은 이혼과 사별과 함께 보통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아픈 경험의 하나다. 지금은 ‘영원한 주택 호황’을 외치는 앵무새 소리에 현혹되기보다는 ‘모기지’의 원 뜻을 헤아려 볼 때가 아닌가 한다.
민 경 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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