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운(運)이라는 게 있을까’-. 미국 역사의 장면 장면들을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상념이다. 그리고는 자문에 자답을 한다. ‘미국민은 지도자 운이 있는 국민’이라고. 다른 말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 부문이 너무 많아서다.
시기상조의 감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중간선거 과정을 보면서 조지 W 부시의 경우도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강한 예감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그는 권력 횡탈자다. 바보에다가 극우파의 장단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다. 해외문제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다. 소수 신제국주의 음모자들의 책동에 휘둘려 미국을 전쟁에 몰아넣고 있다.”
여기서 ‘그’는 W 부시다. 아버지를 잘 둔 덕분에, 뭔가가 잘못돼 대통령이 됐다는 인식이 이 평가의 이면을 이루고 있다. 이런 부시가 그런데 계속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 첫 번째가 1994년이다. 당시 인기절정에 있던 현직 앤 리처즈를 상대로 텍사스 주지사 선거전에 뛰어든 것. 결과는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믿기지 않았다. 부시가 압승을 거둔 것이다.
“W 부시는 언제 대통령에 취임했는가. 2001년 9월20일이다.” 한 정치 평론가의 말이다. 부시는 대법원 판정이라는 전대미문의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됐다. 분명 하자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그가 9.11사태가 나자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 세계 테러조직에 대한 최후 통첩성 연설을 통해 전시 지도자로서의 면목을 새삼 과시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다.
“이번 선거는 케네디 가문에게 뼈아픈 기억이 될 것이다. 캐슬린 케네디 타운센드가 메릴랜드 주지사선거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1922년 이후, 그러니까 실로 80년만에 처음 ‘케네디 이름’으로 출마한 사람이 선거에서 패배를 기록한 것이다.”
케네디가의 조락과 대비해 부시 가문이 새삼 스팟 라이트를 받고 있다. 미국 정치사를 새로 쓰는 ‘명문의 왕조’로 새삼 부각되고 있는 것. 이 스토리의 중심 인물은 다름 아닌 W 부시다.
‘공화당 상·하 양원 장악’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후의 대기록’-. 이 혁혁한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W 부시다. 까딱하면 부담만 안게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부시는 ‘백중지역’ 지원유세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공화당은 반세기여만의 대승을 거둔 것. 탁월한 ‘감의 정치’로 또 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그로 그치는 게 아니다. 이번에는 유엔에서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다. 미의회로부터 이라크 제재 동의를 끌어냈다. 중간선거를 통해 미국민의 지지도 확인했다. 그 여세를 몰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어냈다. 바보 멍청이, 극우파의 꼭두각시 등으로 불리던 부시의 위명이 온 천하를 진동시킨 셈이다.
이와 함께 2004년 대권향방은 이미 정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부시의 재출마는 기정사실이 됐다. 2008년 공화당 대권주자도 이미 정해졌다는 수군거림도 들린다. 민주당의 집중포화에도 끄떡하지 않고 플로리다 주지사 재선에 성공한 W 부시의 동생 젭 부시가 그 후보라는 이야기다.
이제는 W 부시에 대한 평가가 송두리째 달라지고 있다. “올리버 웬델 홈스가 일찍이 루즈벨트에 대해 말한 것처럼 그는(W 부시) 아마도 대통령직에 가장 적합한 기질을 타고났는지 모른다.” 바야흐로 정치적 왕운(旺運)이 뻗치고 있다고 할까….
“그는 저녁 약속 장소에 1시간 전에 나온다. 식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왜 이리 일찍 나왔냐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다. 가 있을 데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는 요즘 거의 점심 약속이 없다. 막연히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다 오전 11시를 넘겨 전화기를 돌린다. 그러나 대부분 선약이 있다는 답변이다….”
부시 가문의 영광이 하늘 끝까지 치솟는 요즘 DJ의 장남 김홍일 의원의 일상을 알리는 국내 보도다. 너무나 대조적이다. 깨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권력, 그 권력의 끝자락에 걸린 낙조(落照)라고 할까. 그런 모습이고 분위기다.
W 부시의 왕운을 새삼 들먹이는 건 다름에 있는 게 아니다. 국가 지도자의 행운은 국민의 축복으로 이어져서다. 반대로 불운은 때로 저주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운의 소치인가. 아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위대한 국민이 탄생시킨다.” 민주 사회의 기본 명제로 운은 선택이고,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지도자란 왕성한 운의, 축복이 쏟아지는 지도자다. 그런 대통령이 이번에는 과연 태어날 것인가.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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