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원흉은 누구일까.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정답은 말라리아다. 수천 만 명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이들 독재자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병균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현재 5억 명이 이 병에 걸려 있으며 매년 270만 명이 이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이렇듯 흉악한 질병이 선진국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는 20년 간 증가일로를 걷고 있다. 왜 일까.
말라리아 퇴치의 1등 공신은 DDT다. 지금까지도 말라리아균을 옮기는 모기를 이보다 값싸고 효율적으로 몰살시키는 약품은 없다. 그 DDT가 1972년 미국에서 사용금지 됐다. 발암성분이 있고 야생 조류의 부화를 막아 번식을 방해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국이 이런 결정을 내리자 전 세계 각국이 앞다퉈 이를 따랐다. 말라리아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거나 이미 박멸된 상태였던 선진국에서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었지만 열대권 국민들에게 이는 재난이었다. 70년대 DDT 사용금지와 함께 말라리아의 창궐로 3,000만 명의 인명이 희생됐다. 지난 30년 간 DDT의 유독성이 과장됐다는 연구가 계속 나오고 있음에도 유엔은 그 사용을 금하고 있다. 환경보호주의자들의 극심한 반발 때문이다.
모든 살충제에는 독성이 포함돼 있다. 이를 사용했을 때 얻는 이익과 금지했을 때 발생하는 손실을 비교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이성적인 태도가 아니다. DDT로 인해 발생했을 암환자 수를 아무리 많이 잡더라도 말라리아 희생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남가주 대기관리국(AQMD)이 한인 세탁업소 절대 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세척제 퍼크를 발암물질이란 이유로 금지하려 해 한인업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퍼크를 실험용 쥐에게 무더기로 먹였더니 암에 걸렸고 세탁업 종사자 발암율이 일반에 비해 다소 높다는 것이 관리국 주장이다.
그러나 어떤 화학 물질이고 대량 투입하면 몸에 나쁘다는 것은 상식이다. 무공해 식품에도 자연이 병충해를 막기 위해 심어놓은 천연 살충제가 들어 있다. 단지 그 양이 미미하기 때문에 인체에 해롭지 않을 뿐이다. 세탁업 종사자 발암율이 높다는 주장도 퍼크를 사용한 곳이나 사용하지 않은 곳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봐 반드시 퍼크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가주는 미국에서 환경 오염에 가장 민감한 주다. 얼마 전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배기 개스 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단 한 방울의 유해 물질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그런 논리라면 자동차도 비행기도 공장도 모두 없애야 한다. 산업혁명 이전의 석기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지구상에서 환경 보호가 잘 돼 있는 나라는 예외 없이 선진국이다. 환경을 잘 보호해 선진국이 된 것이 아니라 먹고 살만 하니까 환경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장 내일 먹을 밥이 없고 땔감이 없는데 산림을 훼손하지 말고 자연을 사랑하자고 외쳐봐야 헛일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규제안을 내놓기는 쉽다. 그러나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규제안 하나 하나가 모두 부담이다. 규제가 늘면 늘수록 경제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좋은 환경을 즐길 여력도 없다.
세탁업은 한인 주력 업종이다. 한인 세탁협회 등록된 업소만 900개가 넘고 등록되지 않은 업소까지 합치면 남가주 전체 세탁소의 70%를 한인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뉴욕이나 시카고 등 타 지역도 비슷하다. 당국이 무리하게 퍼크 사용을 금지시킬 경우 한인 업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 1일 열린 공청회에는 한인 사회로서는 드물게 500명이 넘는 업주가 참석, 집단 의사 표시를 함으로써 일단 금지 결정을 연기시켰다. 관계자들은 관리국도 업소 측 입장을 이해한 만큼 타협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잡다한 규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스몰 비즈니스 업주들에게 갑자기 무거운 재정 부담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 환경도 경제적 여유가 있고 난 다음이다. 가주 정부 당국은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민 경 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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