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에서 흔히 쓰는 ‘회귀(regression)’란 단어는 영국 진화론의 한 과학자인 Fransis Galton의 유전형질 연구에서 시작된 말로 흔히 "평균값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즉 개체들의 극단적이고 변이적 현상들은 시간이 감에 따라 집단의 평균치에 가깝게 회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이를 한국정치의 보수와 진보의 논의에 적용해 보면 정치의 진화와 발전에 대한 일단을 읽어 볼 수 있다. 본질적인 면에서 시장과 자본주의는 인간 ‘본능’적 욕구실현의 원리에 가깝다. 맑스-레닌의 사상에 기초한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들은 이같은 ‘본능’적 자본주의에 대한 극단적 ‘이성’의 도전이었으며, 그같은 거대한 실험들은 한편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보수와 진보의 공존이라는 보다 ‘덜’ 극단적인 것으로의 ‘회귀’라는 값진 역사적 유산을 물려주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자본주의 국가의 발전은 사회주의 정당의 형태건 보수정당 내에서의 진보적 이념의 채택이건 ‘정글의 평화’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나름대로의 ‘이성적’ 통제기제들을 발전시켜왔다. 본능과 이성, 이 두가지 원리들이 결국 역사적으로 극단에 계속 존재하기 보다는 변증법적 진화를 통해 보수와 진보의 공존의 원리로 회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정치는 과연 어디까지 와 있는가. 12월 대선을 앞둔 한국의 정치지형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보다 진보적인 후보의 등장으로 보수와 진보의 진일보한 정치구도를 갖는 듯 보였다. 그러나 대선을 눈앞에 둔 지금, 이념과 원칙의 큰 틀이 선거라는 승패의 ‘공학적’ 논리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당 저당 기웃거리는 국회의원들, 특정인을 중심으로 급조되는 선거정당, 정당간의 정책연대라고 볼 수 없는 집권을 위한 야합의 논리들이 횡행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정치의 행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우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자. 보수와 진보의 공존과 건강한 긴장관계는 오랜 시간을 두고 축적돼온 경험적 결과라는 것이다. 비록 국가나 체제별로 다양한 형태를 띄긴 했으나 오랜기간을 거친 제도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해방이후 제도적 수준의 진보정당이 존재하긴 했으나 분단과 독재의 기간을 통해 철저히 단절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진화를 위한 역사적 기간이 아주 짧았다는 의미이다. 두번째로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제도(institution)중심의 사회라기보다 행위자(actor) 중심의 사회이다. 공식적 제도들 보다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더욱 신뢰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경우 사회구성원들은 전체 정치권이나 행정체제는 불신하지만 정치인과 관료와의 개인적 친소관계는 중시하는 경향을 갖는다. 정치인이나 행정관료들은 정당의 이념과 정강 또는 법과 제도에 기초한 행위보단 정치적 보스와의 관계에 따라 이념과 원칙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점은 결국 이념과 원칙에 기반하는 보수와 진보의 제도적 내재화를 종종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실정치의 측면에서 우리의 보수와 진보는 ‘수구’와 ‘도덕적 우월주의’라는 극단적 행태에 갇혀 있어 건전한 ‘회귀’로의 이행을 지체시키곤 했다. 두 번의 민간정부를 거치면서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들은 때론 ‘도덕적’ 독선에 탐닉하기도 했고 ‘수구세력’은 보수주의로 둔갑하는 현실에서 보수와 진보에 대한 논의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은 것이 또한 사실이다.
보수와 진보의 건강한 긴장관계는 이처럼 역사적 경험의 축적, 사람보다는 이념과 정책이라는 보다 제도화된 것들에 기초한 권위, 그리고 타협과 존중의 문화와 함께 발전되는 것이다.
한국인은 분명 저력이 있는 민족이다. 한국인 특유의 인간관계에 기초한 행위가 제도발전과 더불어 긍정적으로 발현된다면 오히려 제도적 지체에 시달리는 선진국을 능가하는 훨씬 역동적인 사회의 모델을 제공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철새정치인들의 행태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오직 선거의 ‘집권공학’에 따라 이집 저집 기웃거리는 정치인들로 인해 국민들은 또 다시 좌절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어떠한 명분으로든 그들은 보수와 진보의 건강한 회귀를 또 한번 지체 시킨 역사적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는 승자의 권력도 중요하지만 신념을 지키는 아름다운 패자의 존재에 의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념과 원칙에 따른 정계개편이 아닐 바에는 정치권 모두 본연의 그 자리에서 국민의 선택을 기다려 주길 바란다.
장성희(하와이주립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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