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이 눈부시도록 형형색색으로 물들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마음은 잿빛으로 얼룩지고있는 느낌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 낭만의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느낌이 없을 정도로 지구촌이 온통 먹구름으로 드리워져 있다. 그래선지 단풍을 보아도 예전 같은 감동이 없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속에 왠지 자꾸만 위축되는 기분이다. 그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이 시대는 불안과 공포로 뒤덮여 가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세계 1,2차 대전이 끝나고 전쟁이 종식된 냉전시대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는 테러와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위 세계분쟁의 7대 분화구라고 하는 발칸 반도와 체첸의 민족분쟁, 북아이슬랜드의 종교전쟁, 아프리카지역의 민족분쟁, 영토분쟁, 정치분쟁,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들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시미르 충돌, 심지어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필리핀 등 동남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분쟁들도 지구촌의 골칫거리로 대두되고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일어난 테러로 인해 180여명이 사상당한 사건이나,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 체첸반 군이 1,000여명의 관객을 인질로 무장 투쟁을 벌여 수많은 인질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도 분쟁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는 그칠줄 모르는 테러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아깝게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북에서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폭탄 선언을 하고 나서 지구촌일대는 온통 잿빛이다 못해 검정색이다.
그나마 안전지대로 알고있던 미국에서도 지난해 9.11 테러사건에 이어 또 다시 오사마 빈 라덴이 제2의 미국공격을 준비중이라는 설이 있어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고있다. 또 최근에는 워싱턴에서 연쇄 저격범이 등장, 주민들을 공포와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으로 워싱턴 일대 500만 주민은 3주간이나 일상 생활은 물론, 집밖에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오랫동안 미국에 살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불안해서 아무 것도 못하는 삶, 이것이 어디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다행히 수사가 종결돼 발목은 풀렸지만 그 이상 갔다가는 경제에 치명적인 손실은 물론, 워싱턴일대가 마비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지금 시대는 이처럼 자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세상이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서 변하지 않는 건 자연뿐인가 보다.
가을이 되니 나뭇잎이 어김없이 물들고 오곡백과 곳곳에서 무르익어가고 있다. 세상의 질서가 다 무너져도 새날이 오듯 가을의 절기는 변함없이 우리들을 찾아왔다. 아무리 지구가 흔들려도 생명이 태어나고 늙은 사람은 죽어가듯 자연의 순환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쉬지 않고 질서대로 움직이는 자연의 법칙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사필귀정’이라는 네글자다. 하버드 대학의 사무엘 헌팅턴 교수는 “이 세대에 일어나는 분쟁은 문명세계에 대한 야만인들의 이해충돌로 세계를 불안케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만인의 종말은 결국 파멸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다.
아무리 불안이 엄습해 오더라도 세계는 정의의 편에 서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불안은 불안으로 그쳐야 한다. 불안에 떨고 있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불안은 우리의 생활만 마비시킬 뿐이다.
지구촌 곳곳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종교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인종간의 분쟁과 충돌은 더 할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의 여유와 삶의 목표를 더크게 가져야 하지않을까. 아무리 세상의 모든 질서가 다 무너져도 어김없이 태양은 떠오르게 마련이다. 어둠을 통과하면 반드시 새날이 오게 될 것이다.
여주영 본보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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