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이라크에 가려있던 한반도 문제가 북한의 핵 개발 계획 시인으로 긴장국면을 맞고 있다. 왜 하필이면 북한은 이 시점에서 핵개발을 시인했으며 미국은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우선 북한이 회담중 실수를 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켈리 특사가 구체적인 핵개발 증거를 제시하자 당황한 나머지 시인했거나 아니면 고압적으로 나오는 미국에 대한 맞불 작전에서 나온 발언일 가능성이다. 그러나 노련한 외교가인 강석주 외무부상이 이처럼 엄청난 파장을 가져온 실수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북한 체제상 김정일 위원장의 동의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적다.
반대로 고이즈미 일본 수상의 방북 때 김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했던 것처럼 핵개발 계획을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북미관계의 획기적인 반전을 기하려는 의도 일 수 있다. 일단 미국의 ‘우려사항’을 인정한 후 북미 수교를 포함한 포괄적인 타결을 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의도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협상카드를 버리는 것은 북한의 과거 전략과는 대치된다.
한편으론 이번 발언도 사전에 계획된 벼랑끝 외교의 연장선상에서 나왔을 가능성이다. 핵개발 계획 시인은 94년 제네바 협정의 위반은 물론 무효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북미간의 새로운 협상을 필요로 한다. 북한으로선 상당한 모험이지만 미국이 이라크전을 준비하고 있어 당장 북한에 대한 무력행위는 어렵다는 판단일 수 있다. 두 개의 전쟁 수행이 어려운 미국으로선 결국 북한과 협상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기대 섞인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벼랑끝 외교전술은 북일 수교 등 북한이 공들여 추진하는 현안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우선 미국은 일본에 대해 미국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교는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발언은 북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채 최고 정책결정 과정의 혼선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세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벼랑끝 외교전략이 부시 행정부에 먹혀 들어갈지는 의문이다. 사실 북한으로선 상당한 도박을 한 셈이며 부시 행정부로서는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특히 핵 개발을 부정해온 이라크는 공격하면서 핵 개발을 시인한 북한을 그대로 놔두는 것도 미국으로선 부담이다.
부시 행정부는 쉽게 북한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우선은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려 할 것이며 켈리 특사 등이 중국 러시아 및 일본을 방문하고 있는 것도 주변국과의 입장을 정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제한된 군사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미국이 북한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아 벼랑끝 외교전술이 실패할 경우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자명하다. 얼마전 신의주 특구에 양빈을 임명했다가 망신을 당한 북한이 이번에는 미국을 상대로 도박에 가까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의 사정이 얼마나 다급한 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북한 같은 1인 독재체제는 견제와 균형의 기능이 없다. 김정일은 분명 아버지 김일성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으며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처럼 두세 건의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경우 급격한 체제의 흔들림을 맞을 수 있다. 한반도는 또 다시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국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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