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쇄저격사건 계기로 본 연쇄 살인범 검거 사례
지나친 자기과신으로 결정적 단서 남겨
주차위반·경범죄 등으로 적발 되기도
’워싱턴 저격범도 곧 꼬리 잡힐것’기대
지난 2일부터 9명이 살해되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워싱턴 연쇄저격사건이 2주가 넘도록 수사의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모해지는 연쇄살인범들의 특성으로 보아 신을 자처한 ‘타로 카드’ 저격수 역시 지나친 자신감에서 비롯된 부주의로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를 남길 것으로 범죄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수사관들에 따르면, 워싱턴 저격범처럼 낯선 피해자를 무작위로 살해하는 사건이 가장 해결하기 힘들다. 그러나 과거 수년간 경찰을 희롱한 교활한 연쇄살인범들은 범행 초기에는 조심스레 몸을 낮추다가도 일단 “내가 경찰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면 무모할 정도로 대담해져 검거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지난 1971년 캘리포니아 서터 카운티에서 4개월 동안 25명의 농장 인부를 살해한 후안 코로나는 주도면밀한 연쇄 범행으로 단 한 명의 목격자나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의 속수무책에 방심한 그는 피해자의 시신과 함께 자신의 셔츠 주머니에서 떨어진 은행예금 영수증까지 함께 묻고 말았다.
73∼78년 미대륙을 횡단하며 30명 이상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는 78년 플로리다에서 교통경찰과 사소한 시비로 주먹다툼을 벌이다 조사과정에서 범행사실이 드러났다. 번디는 89년 처형됐다.
76∼77년 뉴욕에서 6명을 살해하는 등 도합 7명의 목숨을 빼앗은 데이빗 버코위츠는 주차 위반이 화근이었다. 사건현장에서 주차위반 티켓을 들고 있는 용의자를 보았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티켓 발부 기록을 뒤진 경찰은 어렵지 않게 그를 체포했다.
범죄 전문가들에 따르면, 연쇄살인범들은 교통위반으로 적발되는 경우가 많다. 연쇄살인범들은 사회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무법자’들이라 교통규칙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과속이나 주차위반으로 걸려드는 경우가 잦게 마련. 게다가 미국은 등록된 자동차에 관한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단 적발되면 운전자의 과거 행적이 줄줄이 튀어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91∼93년 뉴욕에서 17명의 매춘부를 살해한 조엘 데이빗 리프킨은 챠량번호판이 없는 픽업트럭에 피해자의 시신을 싣고 운전하다 적발돼 현장에서 체포됐다. 남가주 일대를 무대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청년들을 납치해 살해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랜디 크래프트 역시 시신을 실은 채 운전하다 교통단속에 걸렸다. 크래프트는 무려 45명을 납치해 고문한 후 벨트로 목을 졸라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였다. 93년 샷건으로 보행자들을 쏴 4명을 죽이고 5명에게 부상을 입힌 ‘샷건 스토커’ 제임스 스웬 주니어는 적색 신호등을 위반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한편 교통위반 외에도 사소한 경범죄로 적발되는 연쇄살인범들도 많다. 북가주에서 11명을 고문, 살해한 레너드 레이크와 찰스 구엔은 가게에서 75달러짜리 지갑을 슬쩍했다가 붙들렸다. 경찰이 그의 차 트렁크에서 소음장치와 탄환을 발견하자 레이크는 청산칼리 알약을 삼켜 자살했고, 경찰을 따돌리고 캐나다로 도주한 구엔은 그 곳에서 또다시 가게 물건을 훔치다가 체포돼 미국으로 송환됐다.
범죄 전문가들은 많은 연쇄 살인범들이 주목을 받고 싶은 충동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예가 78∼95년 우편폭탄으로 3명을 죽이고 23명에게 부상을 입힌 ‘유너바머’ 테드 카진스키. 카진스키는 폭탄소포 발송을 위해 몬태나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버스로 여행하는 조심성을 보였으나 뉴욕타임스 등 언론에 기술문명이 사회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자신의 선언서를 실을 것을 요구했다가 형의 글을 알아 본 동생의 신고로 체포됐다.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의 범죄학자인 마이클 러스티갠은 “워싱턴 저격범이 같은 총기와 차량을 범행에 사용하고 짧은 기간 다수의 범행을 저지른 점에서 그리 조심스럽거나 계산적인 연쇄 살인범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그도 조만간 꼬리를 밟힐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우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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