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로비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로비설을 폭로한 한국판 뉴스위크지 보도의 서문이다. 이 보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미국에서 논란이 들끓고 있다.
로비설이 때문이 아니다.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을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평화상 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한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이다. 군나르 베르제 위원장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계획과 관련해 부시 행정부를 비난하기 위해 카터 전 대통령을 평화상 수상자로 지목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대목이 그것이다.
평화상 위원회가 시상과 관련해 ‘정치적 메시지’를 흘리는 건 전례가 없지 않은 일이다. 히틀러 집권 초기 나치 독일의 재무장을 폭로해 수용소로 끌려간 언론인 칼 폰 오씨에츠키를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명했다. 그 게 효시다. 이후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 폴란드의 자유노조 지도자 바웬사,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에게 평화상이 주어졌다.
한가지 흐름이 있었다.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을 암묵적으로 지지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하고자 하는 정치적 메시지는 간접적 시사로만 끝났다. 올해의 경우는 노벨 평화상 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부시 행정부 정책을 비난하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88명에 이른다. 이 중 알프레드 노벨이 평화상을 제정한 취지에 가장 부합되는 수상자는 누구일까. 지미 카터다.” 한 보수파 논객의 평이다.
그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마치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카터에게 평화상을 준 것 같은 정치성 발언이다. 카터에 대한 모독이라는 주장이다. 의도가 그렇다면 세계 평화를 위해, 민권신장을 위해 평생을 이바지해 온 카터의 공로는 무시됐다는 것으로 이는 미국의 집약된 반응이기도 하다.
노벨상은 일본에서도 연일 화제다. 우선 다나카 고이치라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화제는 계속 이어진다. 노벨상을 받은 후 다나카가 보여준 처신이 감동을 주어서다.
고용주인 시미즈 제작소가 노벨상 수상자 예우 차원에서 ‘이사대우’ 승진을 제의했으나 다나카는 고사했다고 한다. 책임이 무겁고 현장에서 연구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다.
일본에서, 또 미국에서 전해지는 노벨상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뭔가 층이 두껍다, 견실한 사회다 하는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것 같다. 일본의 경우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기초과학의 기반이 튼튼하다는 점이다. 기초과학 분야에서만 3년 동안 연속 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데에서 그 저력이 느껴진다.
노벨상 수상자의 사람됨도 그렇다. 오직 연구에만 전념하면서 승진마저 사양이다. 어떤 아름다움마저 더해주고 있다. 오늘의 일본을 이룩한 바탕이 바로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 묵묵히 자신의 분야에 정진하는 보통 사람들이 많다. 또 그런 사람이 평가받는 사회다. 그게 강점이다.
카터의 노벨 평화상 수상도 많은 것을 이야기 해준다. ‘실패작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떨치고 일어섰다. 세계 평화를 위해, 인권을 위해,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봉사로 일관해 왔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카터의 삶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은 물론 카터의 이런 봉사에 대한 헌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런데 카터로 그치는 게 아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닉슨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오히려 더 평가를 받았다. 대공황을 예견치 못해 비난을 받은 후버도 ‘전직’으로서 더 많은 이바지를 했다. 윌리엄 태프트(27대), 존 퀸시 애덤스(6대)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한가지 공통된 사실이 발견된다. 권좌에서 물러난 후에도 국가와 사회에 대한 헌신적 봉사를 멈추지 않은 사실이다.
카터 스토리는 미국 지도층의 이야기다. 미국의 지도층은 다양하다. 또 헌신된 지도자가 하나 둘이 아니다. 그 층이 아주 두텁다. 카터 스토리는 이 사실을 새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저력이, 미국이 받은 축복이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공권력을 총동원 해 노벨상 수상을 로비했다, 아니다’-. 한국판 노벨상 이야기다. 이 스토리에서 묻어나는 게 있다. 천박성이다. 진위야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인상을 주는 것 자체에서 한국적 천박성이 엿보인다. 저질의 정치에 물든 현상인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전해진 노벨상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한국과, 미국과, 일본, 이 세 나라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좌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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