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갑자기 ‘자연산’이란 말이 주변에서 많이 회자된다. 천연식품을 강조할 때 주로 언급되던 단어가 이제는 아시안 게임의 북한 여성 응원단 공식 호칭처럼 되고 있다.
이곳 한인들도 TV 화면이나 신문에 나온 그들의 모습에 넋이 빠지는가 하면 ‘아 그들을 만나러 한국에 가야 하는데’라고 신세 한탄도 한다. 남북을 통틀어 볼 때 남쪽 사람이 분명한 남성들은 “남남북녀란 말이 진리야”라고 떠들고 며느리는 북한의 자연산 미인을 맞겠다고 장담하는 중년도 봤다.
한국의 언론도 ‘천연 꽃미녀’라며 그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며 호들갑이다. 인터넷 발언대에는 “성형 중독에 화장술만 빼어난 남한 여자들보다 북한 여자가 훨씬 예쁘다” “부산남정네 좋겠구먼, 부럽다”는 글로 북한 미녀에 푹 빠진 네티즌들의 마음이 도배되고 있다.
허긴 그들에게서는 요새 거의 똑같은 얼굴로 TV 화면을 질주하는 한국 탤런트들의 몰개성과는 다른 자연스러움이 보인다. 투박스런 말소리가 거세고 또 촌스럽지만 어쩐지 옛적의 우리네 어머니와 언니 같은 포근함, 친근함도 남아있다. 그 때문에 그들을 자연산이란다면 동감할 수 있다.
그러나 시원시원한 큰 눈과 오뚝한 콧날을 가진 그들의 외모만을 보고 “역시 천연미인”이라고 감탄을 하는데는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 우리 한국인들이 큰 쌍꺼풀눈의 여인들을 미인이라고 했는가.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미인은 쌍꺼풀이 없이 얍실하고 길다란 눈을 가져야 했다. 얼굴형도 보름달같이 둥글 납작해야 했고 또 코도 너무 높으면 예쁘다는 말을 못 들었다. 서양의 미적 기준에 따라 성형수술이 일상화된 현재도 ‘자연스런 한국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옛 기준을 근거로 한다. 그래서 지난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수훈을 세웠던 ‘박지성’의 ‘정말 토속적인 얼굴’에 향수를 느끼고 환호를 한 것 아닐까?
몇번을 봐도 평양 외국어대생들이란 북한 응원단들의 눈은 한결같이 컸다. 성형수술이 아니라도 한국인들의 눈이 예전보다는 커지긴 했지만 그들의 눈은 쌍꺼풀이 자연스럽지 않게 컸다. 출중한 외모로 인기를 독차지했다는 박모씨의 얼굴은 눈뿐 아니라 코도 입도 모두 인공손길이 가해진 것처럼 보였다. 한국 젊은 여성들의 얼굴과 다를 바 없었다.
감히 확신하는 것은 그들의 큰 눈은 대부분 성형수술의 결과다. 평양 젊은 여성들 사이에는 10여년 전부터 큰 눈 만들기가 대유행이었던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또 보통 북한 처녀들의 얼굴과 북한의 특수층으로 키워진 이들의 얼굴이 얼마나 다른가를 알아서 하는 얘기다.
90년 10월 취재차 북한에 갔을 때 평양에서 만난 여대생은 쌍꺼풀 수술 후 부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묻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성형수술을 했냐고 물었다. 거침없이 “했습네다”란 대답이 나왔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병원에서 무료로 다 해줍니다”라고 덧붙였다. 피부병이나 생채기가 나서 병원에 가서 치료하는 것과 똑같다며 젊은 층에게는 대유행이라고 말했다.
북한 미녀들이 자연산이라는 맹목적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 특히 남성들에게 ‘그들도 성형수술 미인이다’라며 찬물을 끼얹을 마음은 없다.
자연산은 무대와 관중에 익숙한 이들 북한 대표들이 아니라 차라리 북한에 남아있는 ‘순박하고 꾸밈없는 맨 얼굴과 해맑은 눈동자를 간직한 보통 여성’들임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어딘가 수줍음 타며 잔머리 굴리지 않는 다소 촌스런 ‘조선의 얼굴’을 자연산으로 기대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자연산 인간이 아무리 좋다한들 아무에게나 최고 상대가 아니라는 것도 말하고 싶다. 자연산은 오로지 자연산에게만 걸맞는다. 얼토당토 하지 않은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과 주변을 모두 불행하게 한다.
상류층으로 혼자 살던 한 친지가 “세상에 둘도 없는 자연산 상대를 만났다”고 좋아하더니 얼마 못 가 “사실은 너무 무식하고 수준이 낮아서 자연산으로 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며 몸서리를 쳤다.
세상은 급변하고 나 자신도 크게 변했지만 나를 위한 자연산들은 어딘가에 변함 없이 존재할 거라는 근거 없는 꿈에서는 빨리 깨어나는 것이 좋겠다.
이정인<국제부 부장대우> jungi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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