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기자의 비즈니스 현장 올드패사디나 여성의류점 ‘잘루’
의류는 미주 한인의 주력업종 중 하나다. 의류제조나 봉제업도 그렇지만 의류 판매업소를 운영하거나 그 곳에서 일하는 한인 수는 엄청나다. 의류업소는 남들보다 한발 앞서 유행을 선도하고, ‘필(feel)이 팍팍 와 닿는 물건’을 쉴새없이 낚아와야 살아남을 수 있는 터프한 세계다. 주인 스스로 옷을 사랑해야 하고, 코디 감각도 있어야 한다. 매장은 화려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숨가쁜 노동과 치열한 경쟁이 숨어 있다. 올드타운 패사디나 ‘파세오’ 몰에 있는 한인 운영 영 컨템포러리 여성의류점 ‘잘루’(Jaloux·프랑스어로 ‘시샘하는’)를 찾아 비즈니스 현장을 전한다. ‘잘루’(340 E. Colorado Bl. #117)의 젊은 주인 잔 조씨(28)씨는 기자에게 기꺼이 ‘일일 점원’을 허락했다.
크기가 3,000스퀘어피트 정도인 ‘잘루’는 주중 2명, 주말에는 4∼5명의 직원들이 지킨다. 주중에는 이 정도 인력이면 충분하나 가장 바쁜 토요일은 5명이 뛰어다녀도 정신 없을 정도로 바쁘다.
기자가 일을 시작한 수요일은 썰렁했다. 일요일에 다시 찾았으나 마침 연휴가 끼어 기대만 못했다. “가장 중요하고도 골치 아픈 것이 고객 서비스”라는 ‘잘루’ 대표 잔 조씨의 말대로 매장은 비즈니스의 승부가 갈리는 곳이다. 겉으로는 평화스럽지만 물밑에서는 한 벌이라도 더 팔기 위한 판촉작전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좀 수다스러워야 잘 버텨낸다는 옷가게 점원들이 고객을 대할 때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다.
매장에 들어서는 손님들에게 눈맞추면서 밝게 인사하는 건 기본이다. 다음은 손님에게 부담되지 않도록 멀찍이 있되, 눈은 떼지 않아야 한다.
손님이 필요로 할 때 신속하게 서비스하는 것도 목적이지만 샵리프팅 방지도 숨은 이유다.
손님 기분을 맞춰주되, 오버하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도 중요했다.
손님이 고른 옷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도 “너무 멋지다”며 기분을 맞춰주고, 그러나 너무 입에 발린 말만 하면 믿음이 떨어지므로 흘리듯 적시적소에 코디를 해줘야 한다. 애써 고른 옷을 비싸서 포기하려 할 땐 손님 취향을 파악해 다른 아이템을 권한다. 만삭이었다가 홀쭉해져서 온 손님에겐 순산했냐는 둥, 아기 얘기로 화제를 찾는 순발력도 빛을 발한다.
‘잘루’에서 일한 지 6개월 됐다는 비비아나 클루즈는 매장에 들어서는 여자 손님에게 “치마가 참 예쁘다”며 자연스레 칭찬하는 게, 베테런이다.
기자도 러플 달린 치마를 찾는 한 손님을 도왔으나 어느 스타일이 어디에 있는지, 맞는 사이즈는 창고 어디서 찾아와야 하는지 ‘일일 점원’이 알 턱이 있나.
‘잘루’의 직원들은 스스로 그 날의 매출 목표를 정해 긴장감과 성취감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가령 오늘 매출 목표를 2,000달러로 정한 뒤 그 이상을 달성하면 ‘잘루’ 옷을 50% 할인해 살 수 있고, 직원 전체가 다 잘 해서 업소 목표치를 넘으면 모두에게 20달러의 ‘잘루’ 지폐가 제공된다.
능력에 따른 일종의 베니핏인 셈이다. 8개월 경력의 매니저 헬렌 로페즈는 “적당히 긴장하면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며 “우리 스스로 만든 원칙이라 부담이나 부작용은 없다”고 전했다.
매장이 이렇게 돌아가는 동안 주인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잔 조씨는 매장 뒷문을 열고 사무실 겸 창고로 들어갔다.
열쇠 2개로 문 3개를 지나면 열리는 이곳은 가뜩이나 비밀스러운 느낌에, 미처 매장에 나가지 못한 온갖 사이즈의 옷들이 천장까지 쟁여있어 흡사 보물창고 같다. 이곳은 옷가게 사장이 캐털로그를 뒤적이고 매출 상황을 집계하는 업무 공간이기도 하다.
창고 한 구석에는 반품된 옷들이 쌓여 있다. 온갖 이유로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들을 상대하는 것은 절대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육안으로 봐도 몇 번 입었던 것이 분명한 옷을 가져와 환불해 달라며 언성을 높이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것도 교환기간인 2주가 훨씬 지나서-.
한 달이면 구직 신청서가 수십 장씩 날아들기도 한다. 내친 김에 직원을 뽑는 기준은 무엇인지 조 사장에게 물어 봤다.
첫째는 같은 업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지 본다고 한다. 주말이나 주중 야간 등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우선이다.
지원서 필체가 난필이면 자동탈락이다. 구직 희망자는 한 달에 50∼80명씩 넘쳐나는데, 읽기 어려운 글씨 해독에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구직자의 첫 인상은 남몰래 일일이 기록돼 있다. 직원들은 구직자로부터 받은 첫 느낌을 여백에 쓰도록 돼 있다.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도 지원서를 받아두는 것은 옷가게 사장의 인사관리 노하우에 속한다. 지원서가 밀려드는 것을 봐야 지금 일하는 직원들이 적당히 긴장하기 때문이다.
이직률이 높은 탓도 있다. 파트타임과 풀타임을 합쳐 점원이 머무는 평균 기간은 약 2개월일 정도로 옷가게 점원의 수명은 짧다. 잦은 이직은 옷가게 주인들의 두통거리 중 하나였다.
뚜렷한 개성없으면 생존 못해”‘잘루’대표 잔 조씨올드타운 패사디나의 옷가게 ‘잘루’(Jaloux)의 주인 잔 조씨(사진)는 커피샵 겸 레스토랑을 하다 형이 운영하는 매뉴팩처링 브랜드를 리테일로 들고 나왔다.
지난해 11월 패사디나의 신생 ‘파세오’ 몰에 1호점을 열었으나, 일이 안 되느라 9·11 직후여서 처음 6개월 간은 고생 깨나 했다. 그는 2년 동안 ‘갭’에서 매니저 일을 하면서 여성 의류업계를 리서치하는 등 나름대로 창업준비를 단단히 했다. 이 경험이 매장운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무슨 일이든 바닥부터 알고 실무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미국은 물론 한국, 유럽 등에 출장기회가 잦은 그는 옷을 화제로 손님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고객의 취향과 유행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잘루’의 손님은 18∼30세의 트렌디한 학생과 젊은 전문직 종사자가 대부분. 유명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조씨는 자기 업소만의 뚜렷한 개성 구축을 꼽는다.
옷의 스타일과 물량부터 전략적으로 희소성을 갖고, 업소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도 철저히 브랜드 이미지에 맞춰 나가고 있다. 운영 경력은 짧지만 자신감이 붙어 내년에는 지점 2개를 더 열고 싶다.
그는 올 가을 유행 아이템으로 에스닉풍의 드레스와 초컬릿 컬러, 허리는 짧고 소매는 긴 스웨터 등을 꼽았다.
(626)577-9605
김수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