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다보면 낯선 시골마을들에 대해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다. 외딴 지역의 생판 모르는 곳이라는 사실 자체가 주는 불안도 있고, 이민자들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 시골 주민들이 우리의 다른 외모에 너무 배타적이면 어쩔까 지레 걱정이 되는 탓도 있다.
하지만 프리웨이에서 내려 어느 마을에건 들어서 보면 대개는 마음이 놓인다. 맥도널드, 버거킹, 데니스 같은 식당들, 할러데이 인, 베스트 웨스턴, 모텔 6 등의 호텔들 - 우리 동네에서 늘 보아온 간판과 건물들이 거기에도 똑같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미전국 곳곳을 파고든 체인업소들은 산간벽지이건 사막 한가운데이건 동일한 환경과 균일한 서비스로 여행자들에게 내 집같은 안도감을 주는 이점이 있다.
반면 어디 가나 같은 식당, 호텔, 샤핑몰들이 풍경을 획일화, 도시나 마을의 고유한 특색을 지워버리는 것은 큰 손실로 꼽힌다. 최근 미국에서는 쿠키 커터로 찍어낸 것같이 똑같은 풍경에서 탈피해 각 마을의 특징을 살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전국 사적지 보호 신탁’‘보존기금’등 기구들이 앞장서서 쇠락한 옛날 중심가를 되살리고 타운센터를 보수해 도시마다 특성을 되찾도록 돕고 있다. 획일성이 주는 편안함 대신 색다름이 주는 상쾌한 자극을 택하자는 것이다.
쿠키 커터로 찍어낸 것같은 풍경은 도시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삶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가 않다. 행동반경이 좁은 이민1세들의 삶은 특히 비슷해서 대부분 미루어 짐작 가능한 ‘붕어빵’ 인생들이다. 이민햇수가 대개 경제력을 말하고, 경제력이 사는 집과 타는 자동차를 말해주며, 여가활동은 거의 일률적으로 골프나 한국 비디오 시청 정도.
주인공을 바꿔도 별로 차질이 없을 만큼 삶의 모습들이 비슷비슷한데, 그런 특징없는 삶은 편하기는 하지만 종종 허무감으로 이어진다. 의미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 삶을 ‘나의 삶’으로 특징지어 주는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삶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 하다.
요즘 미국 매스컴을 타며 갑자기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테네시의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키스 테일러라는 평범한 교수이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30대 중반의 그는 지난봄 “뭔가 인생에 변화를 줄 아이디어가 없을까”를 고심했다. 삶에 기쁨과 활기를 채워줄 그 무엇 - 그에게 떠오른 아이디어는 열심히 살다가 갑자기 재정적 곤란에 빠진 보통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가 도움을 주고, 부자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반면 열심히 일하며 사는 서민들은 어려움에 처해도 손벌릴 데가 없다”는 데 착안한 것이었다. 그 역시 대학원에 다니며 단돈 100~200달러가 없어 어려웠던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3월 그는 봉급의 10%인 350달러를 떼어내 적립하는 것으로 기금모금을 시작했다. 그달 월급으로 그달을 사는 서민들에게 예기치 않은 지출은 당장 재정에 구멍을 내기 마련. 갑자기 렌트비가 모자라거나 식품비가 없는 경우, 전기료가 밀려 전기가 끊길 지경에 처한 경우, 자동차가 고장나 일하러 갈수가 없게 된 경우등 몇십달러에서 몇백달러면 곤경을 면할 사람들을 대상으로 단 1회의 도움을 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런 사람들을 찾기 위해 그는 웹사이트(www.modestneeds.org)를 개설했는데 그것이 히트였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기금모금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의 이메일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런 소문이 그를 TV, 래디오, 신문에 등장하게 하면서 그 자신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커졌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는 아파트를 허름한 데로 옮겼고, 매달 적립금을 500달러로 늘리느라 담배도 끊었다. 도움 줄 사람들을 선정하고 기금을 배정하는 일로 휴식 시간은 아예 없어졌다. 그래도 그는 신이 난다고 했다.
“남을 돕는다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입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요”
가을, 사색의 계절이다. 습관적으로 살아온 판에 박힌 삶을 떠나 상쾌한 자극이 될수있는 뭔가 색다른 삶의 아이디어를 구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것이 나의 삶”이라고 내세울 만한 걸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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