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흐름을 뒤바꾼 9·11 테러는 미국인들의 일상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미 본토를 침공한 테러단에 무려 2,819명이나 희생되자 공안(public security)은 미국의 국시(國是)가 돼버렸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아프간 정권을 붕괴시킨 미국의 포화가 이제 이라크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인들 사이에는 애국심과 가정중시의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고 있다.
공항과 국경 검문소 등 출입국 관문은 물론 스페이스 니들 같은 관광 명소, 운동장과 공연장, 또는 각 지역의 연방건물들까지도 보안조치가 훨씬 강화돼 일반인들이 드나들기가 불편해졌다. 이런 와중에서도 도시 테러 대
상물에서 제외된 대학과 병원만은 9·11 이전과 별다른 변화가 없다. 대학
생들이 교실에 들어갈 때 검색 받는 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그러나 대학이 테러범들의 공격 사정권 밖에서 독야청청 할는지는 몰라도 자체의 내용과 가치관이 크게 변하며 위기를 맞고 있다. 안에서 곪아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들조차도 약삭빠르게 실리주의
를 좇고 있다. 양심, 도덕, 긍지, 명예, 자존심 등 대학인이 갖춰야할 기본
적 덕목은 희미해졌고 대신 학점, 석차, 졸업장, 월급, 사회적 지위 따위
가 이들의 머리 속을 지배하는 게 현실이다. 세계최고를 자부하는 하버드
대학생들조차도 돈 생기는 공부에만 편중하면서 성적은 부풀려져 90%가 A
학점이라고 한다.
대학이 상아탑 아닌‘우골탑’으로 불리는 한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학은 지적 탐구의 분위기가 사라진 거대한 직업 훈련소로 전락했다”
는 한 대학총장의 한탄이 현실을 대변한다. 대학이 졸업 후 취업이나 사회
적 지위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사회분위기에서는 적성 따위야 어떻든 취업 잘되는 학과를 선호하는 심리가 팽배할 만도 하다.
언젠가 한 입시 전문기관이 전국의 대입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지원학과를
조사한 결과 인문계서는 관광 및 유아교육 관련 학과가, 자연계에서는 건
축, 정보 및 컴퓨터 등 취업이 잘되는 학과들이 각각 상위를 차지했다고 했
다. 부모들까지도 자녀들이 돈 잘 벌리는 학과에 합격되기를 은근히 선호한
다. 대학의 추락이 어디까지 계속될는지 걱정이다. 기초과학과 인성교육이
홀대받는 현실이 인류문명의 황폐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은 서기 1000년대에 이탈리아에 설립된 볼로냐 대학
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 한국 학자들은 그 보다 6백년 전 고구려 소
수림왕 때(375년) 세워진 태학을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친다. 오늘날의 대
학과 비교해 태학은 규모가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고려 성종 때
(992년) 개성에 설립된 국자감을 들 수 있다. 오늘의 국립 종합대학과 전
혀 다를 바 없으니 한민족은 어차피 세계 최초로 대학을 만든 민족임에 틀
림없다.
당시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율학 등 이른바 6학을 다루는 6개의 단과대
학이 있었다. 입학생들에게 학과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그 집안의 품
계에 따라 과가 정해진 것이 오늘의 대학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과에 따
른 전문교육을 제외한다면 국자감이 특히 중점을 둔 것은 인성 교육, 곧 교
양교육이었다. 지식 교육에 앞서 우선 ‘사람부터 만든다’는 교육방침이
었다. 이 같은 교육 철학이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같은 대학 교육제도는 중국의 고전‘사서(四書)’중‘대학(大學)’의 이
념과도 상통한다. 즉 “대학의 길은 곧 덕(德)을 밝힘에 있고, 백성을 새롭
게 함에 있으며, 지선(至善)에 머무름에 있다”고 가르친다. 여기서의 대학
은‘대인지학(大人之學)’을 의미하지만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대학에도 그
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한시에 태어난 두 사람이 똑같은 법이 없
고 타고난 자질도 서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현대사회에서는 사
람들이 덕목보다는 일률적인 테스트로 평가받는다. 대학교육의 목적이 지식
이나 기술의 전수뿐이라면 학원과 다를 바 없다.
가을학기를 맞아 한인 대학생들은 목전의 취업보다 원대한 인성교육에 초점
을 맞춘 대인지학을 추구할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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