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무기 사찰단 수용 표명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만의 전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 자진 폐기를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고 이라크는 이 안이 상정되기도 전 이미 거부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사담이 자기 왕궁을 비롯한 이라크 내 모든 군사시설을 무조건 개방하지 않는 한(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판 싸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제2의 걸프전이 임박해 오면서 이것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지 해가 될 지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비관론자들은 전쟁이 나면 가뜩이나 위축된 투자가들을 더욱 불안케 하고 석유 값은 치솟아 이중 불황에 빠져드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내수를 진작시켜 경기 회복을 촉진하는 것은 물론 사담이 쫓겨나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 그 동안 금수에 묶여 있던 이라크 원유가 쏟아져 나와 석유 값이 폭락, 세계 경제의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월가의 한 분석가는 “전쟁만 나면 다우가 2,000포인트쯤 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호언했다.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 전쟁이 국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20세기 들어 처음 등장한 주장이다.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 물건을 빼앗아 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쟁을 해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근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발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서구가 산업혁명에 성공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물건은 넘쳐나는데 소비자들은 돈이 없어 사지 못하고 실업자는 넘실대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 해결 방법으로 전쟁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군수산업을 통해 국가 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음을 처음 보여준 사람은 히틀러다. 대대적인 군비 증강과 징병제를 통해 넘쳐나는 실업자를 흡수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독일 국민에게 빵을 주는데 성공했다. 전쟁이 경기 회복의 특효라는 주장은 미국이 제2차 대전 참전을 통해 대공황의 흔적을 말끔히 씻어내자 정통 이론으로 각광 받기 시작했다. 경제가 죽을 쑬 때는 정부가 대대적 투자를 해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은 케인즈에 의해 집대성돼 1970년대까지 세계 경제 학계를 풍미했다.
그러나 60~70년대의 월남전은 전쟁이 경제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 10여년 동안 50만명의 미국 젊은이와 수천억달러라는 거금까지 퍼부었음에도 전쟁은 미국의 참패로 끝났고 그 결과 돌아온 것이라고는 두 자리 숫자의 인플레와 대량 실업밖에 없었다. 70년대의 높은 인플레는 세금을 올리지 않고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가 돈을 마구 찍어낸 것이 주 요인이라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10여년 전 일어났던 걸프전도 전쟁과 경기가 반드시 유관하지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한 예다. 미국이 불경기로 빠져든 것은 걸프전이 일어나기 전인 1990년 여름부터다. 다음해 봄 전쟁이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음에도 미국 경기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침체에 빠진 것도 아니지만 더딘 경기 회복은 전쟁 직후 인기가 90%까지 치솟았던 아버지 부시로 하여금 애송이 클린턴에게 참패하는 수모를 당하게 했다.
현재 미국의 1년 국내 총생산(GDP)은 10조달러가 넘는다. 이번 이라크와의 전쟁 비용은 적게는 500억달러, 많게는 2,000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그 중간인 1,000억달러를 잡더라도 GDP의 1% 미만인 셈이다. 제2차 대전 때 미국이 GDP의 44%를 쏟아 부었던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걸프전 때보다 이라크 군 전력은 현저히 약화된 상태고 미군은 비약적으로 향상된 점을 감안하면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에 유리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꼭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경기는 전쟁 같은 외부적 요인보다 자체 사이클에 더 크게 좌우된다. 특히 이번처럼 전쟁 규모가 GDP에 비해 미미할 때는 더욱 그렇다. ‘전쟁이 나면 경제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민 경 훈 <편집위원> kyum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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