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붕괴되기 직전, 그러니까 고르바초프 시절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도입을 위해 크렘린은 소련의 젊은 엘리트들을 미국에 보냈다. 이들은 그런데 증권시장의 기본원칙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도무지 이해를 못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게 정상화 됐다’-. 바웬사가 이끄는 독립노조 ‘연대’의 자유화 운동을 억압하는 조치를 취한 후 당시 폴란드 군부 실력자 야루젤스키가 한 말이다. ‘정상화 됐다’는 건 ‘공산당 최우선 원칙’이 지켜지게 됐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 뜻이 분명한 단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당혹스럽고 때로는 불분명하게 다가온다. 단어의 뜻은 사회적 콘텍스트에 따라 의미가 달리 들려서다.
인권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자. ‘몽둥이와 이빨’이 지배하는 원시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잠꼬대 같은 소리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러나 인권은 모든 제도의 기반을 이룬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개념조차 희박한 사회에서는 인권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밖에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 말 중 80% 정도만 알아들었다.” 북한의 김정일이 남북 정상회담 후 뒤늦게 털어놓은 말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고위 관리가 최근 펴낸 자서전의 한 대목으로 ‘영어가 너무 많이 섞여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불평을 했다는 보도다.
영어가 많더라는 건 그냥 하는 말일지 모른다. 같은 한국말이지만 남한에서 사용하는 말의 개념이 잘 파악이 안됐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랜 분단과 체제의 차이가 그만큼 사고체계에도 깊은 갭을 남겼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북한에서 자유를 100% 만끽하는 유일한 존재는 김정일일 것이다. 그런 김정일이 ‘남한 말’을 80%밖에 못 알아들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물며’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하물며’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북한의 다수 중간층이야….
“악은 실존한다… 악은 저지되어야 한다.” “‘악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나라들은 미국과 문명 세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대량 살상무기 개발사태는 선제공격을 통해서도 막아야 한다.”
9.11사태 후 워싱턴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이다. 이라크 공격을 앞두고 보다 그 말들은 보다 고차적인 개념어로 포장돼 계속 이어진다. “테러전쟁은 자유를 위한 전쟁이다.” “회교 극렬 테러리즘은 파쇼 전체주의 한 형태다. 회교 근본주의로 사탕발림을 한 게 다를 뿐이다.”
그 말들은 다른 한편 더 구체화되고 있다. “누가 우리의 친구인가.” “회교 테러리즘 후원자, 사우디아라비아는 과연 친구인가.” “민주주의를 위해,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의 친구다… 인터넷을 통해 사우디 왕가의 전체주의 독소를 고발하는 사우디인,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탈북자들이 우리의 친구다.”
친구를 알면 적이 누구인지는 자연 판명된다.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투옥된 아랍의 지식인, 또 탈북자들이 친구라면 그들을 억압하는 세력은 바로 적이다. 회교 독재정권, 북한이 그들이다. 그리고 인권이란 아예 무시, 김정일 체제를 도와 탈북자를 체포해 넘기는 중국도 미국의 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워싱턴의 공식 입장은 물론 아니다. 언론이라는 민간 채널을 통해 매일같이 전해지고 있는 메시지다. 이 ‘미국의 소리’는 선과 악, 빛과 어두움, 자유와 독재의 대결로 극명히 대조돼 있다. 여간 예사롭지 않다. 메시지마다 ‘악은 저지되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스며있어서다.
김정일이 일본인 납치를 공식 사과했다. 영변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003년까지로 예정된 미사일 발사실험 중지 기간을 연장한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다. ‘극히 이례적’이라는 논평이 뒤따른다.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수령절대주의 체제에서 수령은 절대로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다는 북한의 신조에 비추어 그렇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바로 전날 사담 후세인은 유엔 무기사찰단의 재입국을 조건 없이 수용한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이라크에 대해 강력한 행동을 촉구한지 나흘만의 일이다.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나의 언어’로 메시지가 전해질 때 이해가 빠르다. 내가 알고, 체험하고, 그 가치를 아는 단어를 구사할 때 의미 파악이 정확하다. ‘이빨과 몽둥이’만이 말해주는 사회에서는 많은 경우 ‘말보다는 포효(咆哮)’가 명백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의 반응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결코 이례적이 아니다. 강경 시그널이 먹히는 체제라는 이야기다.
언어가 통한다는 건 사고체계가 같다는 의미도 된다. 더 나아가면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이야기다. ‘통역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남북정상회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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