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한 초등학교 남학생이 목발을 짚고 친구 생일잔치에 갔다. 잔치가 파할 무렵 친구 아버지가 생일잔치에 온 아이들을 불러모아 강아지를 한 마리씩 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예쁜 강아지를 고르느라 신이 났다. 하지만 소아마비 소년은 뒷다리 중 하나가 다른 다리의 절반길이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를 골랐다. 친구 아버지가 “왜 하필 이 강아지를 가지려 하느냐”고 하자 소년은 “나도 태어나면서부터 다리를 못썼기 때문에 이 강아지에 정이 간다”며 볼품없는 강아지를 껴안고 볼을 비볐다.
또래에게서 놀림받으며 자란 소년은 이 강아지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따돌림당할 것이라 생각하고 보듬어 주려한 것이다. 크리스천 선교자료에 나오는 이 일화는 몸이든 마음이든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딱한 사정을 진정으로 헤아린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동병상련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결코 남도 나처럼 곤경에 처할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아린 가슴을 안고 사는 9.11 테러희생자 유족들은 테러리스트와 그 후견인을 벌하고 싶겠지만 또 다른 폭력으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해 그 유족들이 울부짖는 것을 보고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헌데 부시는 9.11 희생자들을 떠올리면서, 무수한 양민희생을 부를 대규모 군사행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외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사담 후세인에 대한 무력행사는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명분이 강한가 약한가에 대한 논쟁은 이미 힘을 잃은 듯하다. 반전론보다는 전쟁 피해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할 형국이다. 그러니 이라크를 치더라도 죄 없는 주민의 피해를 줄이는 방안 모색이 쟁점이 되는 게 현실적이다.
부시는 대선 캠페인에서부터 지금까지 ‘동정적 보수주의’를 적어도 이념적으로는 자신의 신조로 삼아왔다. 특정 계층이나 인종이 소외되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했다. 최대강국의 지도자답게 미 국민뿐 아니라 이라크 주민들도 이 신념으로 아울렀으면 한다. 힘도 없고 잘못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니 말 이다.
부시는 후세인을 자국민을 억압하는 독재자와 ‘악’으로 지칭했다. 그렇다면 후세인 주변의 측근과 친위대를 선별해 박멸하는 작전을 펴야한다. 후세인 치하에서 잠잠히 사는 대다수 국민들이 공격을 받아서는 안 된다. 집에 바퀴벌레가 득실거려 약을 뿌릴 때도 음식이나 그릇에 약이 묻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법이다. 이라크 공격으로 양민 희생이 속출하면 “누구나 자유와 인권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 부시의 뉴욕타임스 기고는 위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시는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라크에 민주주의의 나무를 심어 주민들이 그 과실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새 정권에서 민주화를 이룬들 애꿎은 주민들이 턱없이 죽어나간 뒤라면 아무리 좋은 제도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옆집 주인이 이젠 우리 가족까지 죽이려 하므로 먼저 손을 써야 옆집 가족이 살고 우리 가족도 산다”고 하면 공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야밤에 그 집에 불을 질러 어린 자녀들까지 몰살한다면 반감을 살 일이다.
독재자 후세인 밑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라크 주민들이 전쟁의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을 미워하는 자들의 반인륜적 테러로 많은 미국민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것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부시는 기회 있을 때마다 후세인 제거와 세계 평화를 하나의 등식으로 연결하고 ‘세계평화의 사도’를 자임했다. 하지만 미국민의 억울한 희생에는 분기탱천하면서 같은 처지에 처하게 될 이라크 주민들에겐 “불가피했다. 후세인을 원망하라”고 한다면 ‘세계평화의 사도’로 평가받기는 힘들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와 달리 이라크와의 전쟁은 치열한 시가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진으로 가족을 잃으면 주먹으로 땅이라도 찧겠지만, 후세인을 없애려는 폭격에 가족을 잃은 사람은 가슴에 한을 묻고 영원히 “반미”를 외칠 것이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것을 잘 알고서도 예방 차원에서 이라크 공격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 그 희생을 가능한 적게 하려는 고민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 bong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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