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랜스제일장로교회의 담임 이필재 목사(58)의 은퇴선언이 요즘 남가주 한인교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필재 목사는 지난 8월18일 주일 대예배 설교를 통하여 올해말까지 목회하고 내년 1년 안식년을 가진 후 60세가 되는 2003년 12월말 은퇴하려는 자신의 결심을 성도들에게 자세히 알리고 교회가 이를 준비하도록 권면했다. 토랜스제일장로교회는 신자수가 4,000여명, 연 예산이 600만달러가 넘는 남가주의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교회로 25년의 역사동안 한번도 분열되거나 갈등을 빚지 않고 조용히 LA외곽에서 교회의 사명에 힘써와 이민교회의 모범이 되어왔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담임목사의 헌신과 열정,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로 이목사는 목회에서는 물론 개인생활에서도 말과 행동, 신앙이 일치하는 삶으로 성도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목회자들이 보통 65~70세에 은퇴하는 한국교계 현실에서 다소 이른 60세에 은퇴를 발표한 그의 선언이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회장의 명예와 권력에 물들어 ‘물러나야할 때’를 잘 모르거나 물러났더라도 원로목사로 남아 후임과 교회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목회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필재 목사의 은퇴설교는 4년전 한국의 주님의교회에서 약속한 10년 목회를 마치고 물러난 이재철 목사의 설교를 연상케한다. 미주 이민교회에도 이런 목사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이목사의 설교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토랜스제일장로교회는 창립이후 지금까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임재한 교회로 성장해왔다. 양적으로도 크게 성장했고 연 1백만달러 이상을 외부선교에 사용하고 있으며 장애인 목회를 어느 교회보다 열심히 해왔다. 이민교회중 2세교회를 최초로 완전 독립시킨 교회로 본이 되고 있으며 1.5세 예배도 날로 성장하고 있어 머잖아 완전 독립시킬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잘 되어가는 대형교회에서 왜 담임목사가, 누가 뭐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조기은퇴를 결심했는가를 놓고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토랜스제일장로교회 안에서 이 교회를 가장 사랑하고 애착을 가진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36세에 시작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한결같은 열정으로 목회해왔으며 내 젊음을 다 바친 이 교회가 영원히 빛나는 주님의 공동체가 되기를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애착이 욕심으로 변질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는게 인간이므로, 내년 12월 은퇴를 결심한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교회가 처음 건축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호손의 안식일교회를 8년간 빌려 사용하다가 “우리도 교회를 지어 타인종에게 빌려주며 빚을 갚자”고 건축을 시작했는데 “교회 건축하면 목사만 좋아진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나는 그때 나의 양심과 합의했다. 고난스럽게 건축을 시작해 다 끝내고 목사가 정말 좋아질 때가 되면 교회를 떠나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양심이 나를 후원해 강력히 추진할 수 있었고, 예상과 달리 건축이 크게 확대되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으나 잘 끝내게 되었다.
오는 12월, 앞으로 네 번만 더 페이먼트를 내면 우리교회는 본당과 교육관 모두 800만달러의 빚을 페이오프하게 된다. 전문가의 감정에 따르면 우리 교회의 건물은 시가 2,300만달러라고 하는데 1달러의 빚도 없이 완전히 갚은 것이다. 그동안 그 큰 짐을 지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정말 자유함을 얻어 목사 노릇하기가 좋아지는 시기가 왔으며, 그래서 바로 이 시기에 나는 양심과 타협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이다.
둘째, 교회의 역사 가운데 교회를 가장 어렵게 하는 것이 관료주의다. 오래된 교회일수록 관료주의가 심하고 이것은 목사와 장로 등 지도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우리가 소속된 미국장로교단(PCUSA)은 장로직 연한을 3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PCUSA 산하 한미노회에서는 이 모법을 한국식 교회전통과 접목하는 시험기간을 갖고 있다. 우리 교회는 수년전 장로의 시무연령을 60세로 낮췄고 이에 따라 지금까지 26명의 장로들이 조기은퇴했다.
나는 이 60세 은퇴법이 통과되던 날 “나도 60세에 이 교회에서 은퇴한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법이란 만든 사람이 먼저 지켜야 신선한 것이다.
셋째, 우리 교회가 좀더 업그레이드되려면 미국문화에 동화된 새로운 목회자가 필요하다. 지금 교단에서는 나날이 성장하는 우리 교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함께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미국사람을 앉혀 놓고도 뜨겁게 감동시킬 수 있고, 한국말 설교도 그렇게 잘 할 수 있는, 미국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열정있는 후임목사가 오는 것이 우리 교회의 갈 길이다. 그리하여 토랜스제일장로교회는 우리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이 사회에서 필요한 교회로 발돋움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넷째, 이곳서 24년 목회한 나는 내년 12월 60세가 된다. 많은 사람이 표현은 안 해도 이쯤해서 담임목사의 얼굴이 바뀌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나가라’는 단계가 오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와 교회를 위해 좋다고 판단했다. 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이곳에서 노년에 여러분과 좋은 관계로 지내며 살고 싶다. 그러나 물러나는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그 후의 일에 일체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내년 12월까지 후임목사를 청빙하려면 지금부터 기도하고 시작해도 시간이 넉넉지 않다. 훌륭한 목사를 다른 교회에서 스카웃하는 일도 어렵고, 교인들이 저마다 아는 목사를 끌어오기 위해 싸우다보면 교회가 여러 파로 갈라지고 그 틈을 타는 마귀의 역사도 막을 길이 없다.
내가 굳이 내년 1년동안 안식년을 요청한 이유는 후임목사 청빙에 절대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니 여러분도 청빙위원회가 일하는 동안 기도 많이 하고 잘 도와주기를 바란다.
나는 내년 1월1일 떠나 12월31일 돌아오려고 한다. 이를 두고 장로들이 걱정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에서 “내가 없으면 이 교회가 큰 일 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 중의 교만이다. “내가 없으면 이 교회는 훨씬 더 잘 된다”고 생각해야 하며 이제 토랜스제일장로교회에서는 이필재 목사라는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 가장 좋다.
이필재 목사는 피어선신학교와 서울장신대학교를 졸업하고 76년 도미, 텍사스휴스턴중앙교회를 개척했으며 78년 당시 설립한 지 11개월 되던 토랜스제일장로교회에 부임해 24년간 목회했다. 어린 시절 한쪽 눈을 실명한 장애인으로서 “그것을 극복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많이 임했다”는 이목사는 목회중 장애인 사역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또한 이목사의 아내인 이영숙 사모는 디스크 수술후 몸이 불편해 전통적인 사모역할을 많이 하지 못했으나 이목사와 교인들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목회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이목사는 안식년 동안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좀더 할 계획이며 은퇴후에는 작은 교회를 개척하거나, 최근 청빙의사를 밝혀온 서울의 모교회에 부임해 남은 인생도 목회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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