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노조가 큰 인기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영향력도 많이 쇠퇴했다. 가끔 항공사 노조들이 들썩이긴 하지만, 요즘은 디트로이트 같은 곳에서도 파업소식은 들려 오지 않는다.
한인식당 중 노조가 있는 곳은 호텔내 식당 2곳 정도인데 막상 이 식당의 한인 종업원들은 소속 호텔노조에 그다지 관심들이 없다. 한 웨이트리스는 “매번 회비(노조비)만 받아 가구요- ”라며 시큰둥하다. 노조 있는 식당 보다는 팁 많이 나오는 식당이 좋은 듯 그녀는 노조 없는 보통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의 전체 근로자중 노조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크게 줄었다. 연방 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80년대 초에는 전체 근로자의 20%가 노조원이었으나 지금은 13%선. 아시안 근로자는 12%가 노조에 가입해 있다고 한다.
노조의 인기가 떨어진 것은 노조의 필요성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의 재분배가 납득할 만한 선에서 이뤄지고, 노동조건도 잘 지켜진다면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한국에서 성장기를 보낸 이민 1세들은 자연히 한국과 미국의 노동현실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70년대와 80년대 초, 서울은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살기 괴로운 곳이었다.
노조는 생각만 해도 불온한 것처럼 여겨졌다. 일반시민들은 전혀 모르는 가운데 한국 노동운동사에 획을 그을 만한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었다. 어린 여공들은 잠 안오는 약을 먹은 채 잔업에 내몰리고, 구사대가 반나의 시위대에 몽둥이 찜질을 하는가 하면, 농성장의 여공들에게는 똥물세례가 퍼부어지기도 했다. 원풍모방, 동일방직 등 노동투쟁이 격렬했던 곳은 입과 입을 통해 그 은밀한 이름들이 암구호 처럼 전달됐었다.
젊은이들은 일제하 원산항 총파업등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불온서적 읽듯 더듬어 나가다가 모리스 돕이나 스위지 같은 좌파 학자들의 경제 이론서에 빠져 들기도 했다.
그 때는‘미국 노동운동사’마저 판금서적이었다. 미국의 노동탄압 강도는 한국과는 비교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런 책들은 일깨워 줬다. 총의 나라 답게 광산주가 광부를 총으로 쏴 죽일 정도로 미국의 노동탄압은 잔혹했었다. 그 희생을 딛고 미국의 노동계는 오늘과 같은 안정을 이뤘다.
주류 노동계와는 달리 요즘 미국사회에서 노동문제가 뜨거운 곳은 바로 이민사회다. 이곳에서는 아직 최저임금과 오버타임등 기본적인 노동조건 준수가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비즈니스 규모가 커지면서 노조결성 문제도 핫 이슈로 대두했다.
한인등 대다수 아시안 업체의 노조문제는 자칫 히스패닉 종업원들과의 인종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우려할 점이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인종문제는 노동문제와는 또 다른 휘발성과 폭발력을 가진다. 노사갈등을 인종간의 이슈로 비화시키지 않고 순수한 노동문제로 가두어 두려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지만 역으로 인종문제의 폭발력을 빌어 노동문제를 해결하려는 불온함은 없는지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전체 한인 대형마켓의 공동이슈가 되고 있는 마켓노조 결성 움직임에 대해 한쪽에서는 “어차피 비즈니스 규모가 이만큼 커졌으면 노조는 비켜갈 수 없는 이슈”라는 의견도 나온다. 차라리 전 마켓에서 노조가 결성돼 마켓간의 공정 경쟁이 이뤄지면 비즈니스가 질적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의견도 있는 것이다.
물론 마켓주인들은 탁상공론이라고 일축한다. 노조결성 후 예상되는 임금인상 등을 고려하면 마켓측 부담만 연 수 백만달러는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노조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하려면 인격경영, 준법경영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기업경영의 과실은 직원들과 나눠 갖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안상호<경제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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