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처음 방문한 나이 든 한국인 친구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아프리카도 별로 살기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자랄 때의 한국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하며 “이삼십년 후면 르완다도 한국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기도 한다. 한인 친구들의 이런 낙관적 예언이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눈앞에 보이는 아프리카의 현실은 비참하기만 하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아프리카 원주민인 바트와를 방문한 일이다. 르완다 국민의 1% 정도가 바트와족인데, 그들이 르완다의 원주민이다. 바트와족은 피그미족이라고도 불리며, 키가 작고 정글 속에서 사는 아프리카 원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방문하던 도시인 부타래에서 30분 정도 가면 피그미 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선교 사역이 끝난 후 우리 일행은 그 촌을 찾아 나섰다. 도시 근처에서 살지만 소외되어 있는 이들을 현지인들조차 몰라, 우리는 묻고 물어 찾아갔다. 르완다 정부에서 지어 준 건물에서 여덟 가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르완다 사람들조차 찾아주지 않는 그들은 갑자기 방문한 우리들을 보고 놀라워하였다. 우리가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한 후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가져온 몇 가지 물품을 나누어주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가족사진을 찍어 주고 싶었다. 현지 목사인 폴이 이들에게 사진에 대해서 자상하게 설명하며 가족별로 포즈를 취하라고 부탁하였다. 어떤 식구는 세명의 소가족이었고, 어떤 식구는 열명도 넘은 대가족이었다. 올망졸망한 어린아이들에 둘러싸인 가장인 듯한 남자는 자기 식구 차례가 되자 “차려 경례“ 하는 자세로 포즈를 취하였다. “치즈” 하면서 웃으라고 하였더니 입안 가득 찬 썩은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가장에게 건네주자 온 가족이 사진이 현상되는 과정을 보면서 신기해하였다.
아이들에게 캔디와 장난감을 나누어주었다. 우리와 동행한 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들판으로 가서 축구를 가르쳐주었다. 맨발로 아이들은 공을 좇아 바나나 나무 밭 사이를 뛰어다니며 환성을 터뜨렸다. 아주머니들에게는 교사훈련에서 사용하고 남은 가위를 주었다. 가위를 무엇에 쓸 것이냐고 물었더니 머리를 자르는데 쓰겠다고 하며 좋아하였다. 가지고 간 성경책이 모자랐다. 폴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만 준다고 말하면서 한사람씩 나와서 한 구절씩 읽게 하였다. 글을 읽지 못하는 한 여자는 책을 받지 못하자 발을 동동거리면서 화를 내었다. 내년에 우리가 다시 올 때 글을 읽을 줄 알면 성경책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그녀를 달래었다.
한국에서 온 축구선수가 여관에 버리고 간 헌 운동화 한 켤레를 누구에게 줄까 하고 고심하며 우리들을 에워싼 무리를 둘러보았다. 선물 받으려고 다투어 손을 내미는 사람들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져서 무리에 끼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 하며 가장자리에 서 있는 나이가 가장 많은 듯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에게 헌 운동화를 건네었다. 너무 흥분하여서인지 운동화를 받아 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깔깔 웃었다. 그는 운동화 끈 푸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우리는 운동화 끈을 매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신발을 신은 그는 좋아서 껑충 껑충 뛰었다. 그는 육십 평생에 신발을 처음 신는 것이라고 함께 간 목사가 귀띔하여 주었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와서 벽장 속에 널려 있는 수 켤레의 신발을 볼 때마다 헌 운동화를 신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피그미 촌의 그 남자가 떠오른다.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아프리카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신발 한 켤레를 소유하지 못하며 가난과 질병속에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삼십년 후에는 아프리카도 한국처럼 살 것이다”라는 한국인 친구들의 예언이 맞기를 바라며 전쟁 대신 경제 부흥에 힘써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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