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쟁에는 엄청난 변화가 뒤따른다. 한 시대의 구분은 대개 전쟁을 전후로 해 이루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전쟁은 모든 기존 질서를 파괴한다. 그리고 파괴 뒤에 새 질서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숫자로만 따지면 19세기는 1800년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원년은 그러나 1815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상당수 역사학자들의 견해다. 전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새 질서를 연 해가 1815년이어서다.
20세기도 마찬가지다. 사실상의 20세기는 1914년에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 해는 99년간 이어져온 평화기, 다시 말해 ‘사실상의 19세기’가 끝나고 1차대전이 시작된 해로 이후 ‘전쟁의 시기’를 진정한 의미의 20세기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동서냉전. 20세기의 시대상을 나타낸 전쟁이다. 말하지면 열전(熱戰)으로 시작돼 냉전(冷戰) 종식과 함께 끝난 게 20세기라는 이야기다. 진정한 의미의 20세기는 그러므로 1914년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해인 1989년까지의 75년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D-데이는 언제인가’-. 9.11사태가 발생한지 1년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된 테러전쟁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란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정작 관심은 V-데이에 쏠리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제거 후 이라크의 운명은 어떻게 되나’ ‘미군은 이라크에 얼마나 오래 주둔해야 하는가’-. 벌써부터 제기되는 질문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전쟁은 단순히 사담을 몰아내는 전쟁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바그다드에서, 다마스커스로, 테헤란까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리야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확전론이다.
확전론은 이라크 전쟁은 독재로부터의 해방전쟁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회교 광신주의 전제정치든, 세속화된 독재체제든, 그 체제가 무너진 후에는 반드시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서야 한다는 일종의 민주화 성전(聖戰)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바그다드, 다마스커스, 테헤란, 리야드가 타겟 리스트에 오른 건 다름이 아니다. 미국, 더 나아가 서방문명을 근본에서부터 부정, 파괴하려는 회교 극렬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체제가 바로 이라크이고, 시리아이고, 이란이고, 사우디아라비아라는 판단에서다.
한마디로 민주주의 도입만이 해결책으로 바그다드에 민주체제가 들어설 때 중동지역에는 ‘민주화 대지진’이 일어나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 파장이 인다는 주장이다. 지극히 미국 중심의 논리 같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일방성의 환상만은 아닌 것 같다. 21세기는 ‘팍스 데모크리티카’의 시대가 된다는 전망에 비추어 볼 때 더 그런 생각이다.
‘전쟁의 세기’인 20세기는 민주주의 확산의 시대로도 볼 수 있다. 20세기 초 북미와 유럽 일부지역에 국한됐던 민주주의 체제는 2001년 현재 121개에 이른다. 전 세계 인구의 60% 이상이 민주국가 시민인 셈이다. 눈부신 확산이다.
이같은 민주주의 확산에는 전쟁이 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2차대전이 끝났을 때, 또 냉전이 끝나면서 민주국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민주주의는 이제 대세다. 일종의 예정론으로까지 발전하면서 21세기는 ‘민주주의에 의한 평화시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굳어지고 있다.
예외가 아랍-회교권이다. 전 세계의 군사독재 체제는 대부분이 아랍권에 몰려 있다. 아랍-회교권 국가중 민주주의가 실시되는 나라는 한 두 개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아랍-회교권에서 아직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발발한 게 1차 걸프전이다. 그리고 10년 후 9.11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또 1년 후 이라크 전쟁 발발은 초읽기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 이라크 전쟁을 그러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20세기와 21세기의 충돌로 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의 도래를 알린 전쟁일지 모른다. 또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전쟁인지도 모른다.
군사적 측면부터 보자. 비교하자면 정보화 시대의 군대와 산업화 시대의 군대의 전투가 이라크 전쟁이다. 미군이 바로 정보화 시대의 군대로 전쟁은 일방적으로 끝났다. 장거리 정밀 타격무기와 지상, 해상, 공중, 우주 및 사이버의 5차원적 전쟁에 의한 전략적 승리의 전쟁이었다.
이라크 전쟁은 동시에 새로운 대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전쟁일 수 있다. 아랍-회교권의 민주화 바람이 그 예상되는 대변화로 ‘팍스 데모크리티카’시대는 또 한차례의 대전쟁을 통해 윤곽이 굳어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 과정에서 그러나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를까.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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