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피한지도 모르겄다, 그냥 막 잘해주고 싶어야. 한평생 고생만 하더니 저렇게 늙어서 기운이 없어졌나 싶으니 자꾸만 불쌍헌 맘만 들고, 지금 맘 같아서는 저러다가 네 어미 정신 잃으면 대소변이라도 다 받아줄 것 같아야.
아버님은 어머님의 어깨를 애잔하게 자꾸 쓰다듬으셨다. 작은 체구의 어머니는 아버님에게 전적인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어깨를 맡기고 계셨다. 찾아뵐 때마다 공주처럼 받아주시는 아버님의 헌신 속에 자꾸만 어린 아이 같아지는 어머님이셨다.
앉을 때 앞으로 두손을 짚으면서 앉아야 쓰는디 그냥 꿍덕 앉다가 뒤로 뻥 넘어져 머리가 맨날 찧어서 이 머리가 성할 날이 없당께. 여기봐라, 여기는 또 어따가 찧어서 요렇게 멍들었는지 알 수 없어야. 아버님은 어머님의 성긴 머리카락을 휘저으시며 나에게 이곳저곳을 보여주셨다. 어머님은 아직 총기가 성하심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의 어린 아기가 되어 가장 기본적인 자기 보호기능에 대한 긴장의 끈을 손놓아 버리셨다. 걱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아기처럼 세상 편한 얼굴의 어머님은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당신만의 호젓한 세계 속에서 평안하셨다.
저녁을 드시자마자 기운이 없다고 누우셔서 슬슬 눈을 감으시는 어머님을 아버님은 억지로 일으켜 세우셨다. 걸어야 산다시며 독촉하시는 아버님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머님은 마지못해 일어나셔서 아버님을 따라나서셨다. 나도 두분 산보가시는데 끼워달라고 졸라서 같이 나서게 되었다. 밖은 한낮의 더운 기운이 사라지고 시원하고 소소한 바람이 일고 있었다. 가까운 이웃 뜰에 장미가 있는지 달큼한 장미 향기가 날리고 있었다.
아버님은 앞서서 황황히 걸어가셨다. 어머님은 뒤에 축 쳐져서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셨다. 한참을 서서 기다리시던 아버님은 되돌아 걸어오셨다. 어이, 며느리가 있응게 더 못걷네, 싸게싸게 걸으소, 그래야 운동이 된당게. 아버님은 어머님 손을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결연한 모습으로 어머님 손을 꼭 붙잡고 넘어질세라 잡아 끄셨다. 뒤에 쳐져서 두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름답고 젊은 연인이 두손을 잡고 걷는 모습도 보기 좋지만, 80이 다 되어 행여나 넘어질세라 두분이 두손 꼭 부여잡고 걷는 모습이 정말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두분 모두 이제는 미와 매력이라는 잣대로 잴 수 없을만큼 허물어진 모습이지만 오히려 젊은이들의 반듯한 신체적 용모가 주는 아름다움보다 감동이 더했다. 하늘을 쳐다보며 한참 눈물을 삼켰다.
아버님, 젊으셨을 때도 이렇게 어머님 살뜰히 챙기셨어요? 나는 내심 부러워 죽겠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언감생심, 말도 마라. 큰딸이 아버지 라고 부르면 어른들 보기 챙피해서 죽을 것만 같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어야. 한번 보돔아 주지도 못했단 말여, 애비 부르지 말라는 소리도 감히 낼 수가 없어서 그저 눈만 흘기는 것이 일이였제, 오죽허면 큰집 조카가 내 별명을 눈깔보라고 했당게, 눈만 흘긴다고 말여. 이제는 그런 것 저런 것 눈치 안본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혀, 시간이 얼마 안남었단 말이시.
아버님은 어머님을 생각해서 어느집 화단에 세워진 벽돌 위에 앉으셨다. 그곳은 한바퀴 동네를 돌고 나서 두분이 앉아서 쉬는 장소라 하셨다. 아버님은 어머님이 쿵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어깨를 감싸 앉힌 다음, 당신도 어이구구 하시며 피곤한 다리를 쉬셨다. 어머님을 걱정하고 계시는 아버님 당신도 그렇게 좋은 건강이 아니셨다. 온 몸에 퍼진 관절염으로 늘 통증으로 시달리고 고혈압과 심장 기능의 이상으로 조제약을 7가지나 드시는 분이었다.
어머님이 넘어질세라 어머님 옆에 조금의 간격도 없이 앉으신 아버님이 피가 잘 통해야 저리지 않는다며 어머님 두 손을 열심히 주무르며 마사지하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목줄기가 아파왔다. 감히 그 그림 속에 끼지 못하고 관조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나는 조금 떨어져 서서 두분을 바라보았다. 인생의 허망함이 허연 서릿발같은 두분의 머리카락에 무심하게 얹혀져 있었다. 삶의 진수는 진정 무엇일까? 80을 눈앞에 둔 어머님은 몇 년 전부터 그 많던 기운이 사라지고 미미하게 삶의 끈을 붙잡고 계신다. 허망함과 기운 없음과 무심한 응시. 인생의 과정 중에 재미와 의미라는 귀중한 요소가 빠져나간 공간을 어머님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계신다. 어쩌면 어머님이 붙잡고 있는 생명의 끈은 진정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당신의 존재로 인해 주위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더 진실할 것이다. 외롭고 험난한 인생살이에 시달린 한 영혼이 온갖 잔병들로 허약해진 육체 속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산책이 끝나고 잔디밭에 물을 주고 들어오신 아버님은 밥 먹기 싫다고 도리질하는 어머님의 손을 붙잡고 입을 벌려 죽 한그릇을 억지로 다 먹이시면서 말씀하셨다. 안 먹으면 당장 죽어, 죽으면 당장 땅 속 깊은 곳에 꽁꽁 묻어버릴껴, 거기는 얼매나 춥고 무서운지 아능겨? 안죽고 싶으면 빨랑 먹어. 밥을 먹어야 약을 먹제. 목소리를 짐짓 크게 높이시며 아버님은 냅킨으로 어머님 입을 닦아주셨다. 어머님을 바라보는 아버님의 눈에는 사랑과 염려가 가득했다. 아들 며느리는 두분의 그런 모습에 실실 웃음을 실어 어머니는 정말 행복한 분이시네요, 했다. 아버님은 갑자기 심각해지셔서 놀릴 것 없다. 너희들이 해야 할 일 내가 살아서 대신 해주니 고맙다고 해야 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무서운 일 아니냐. 그것을 조금이라도 방지할라고 허는 짓이제. 아버님은 배부르다고 도리질하는 어머님의 배를 만져보고는 그만 허면 된 것 같다며 도망치듯 의자에서 일어나시는 어머님을 붙잡는 것을 포기하셨다.
나는 어머님과 아버님 나이가 되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남편에게 손을 맡긴 채 동네길을 산책하고 있을까? 그렇게 아름다운 그림이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그것도 꿈일까? 아버님 어머님 뵙고 온 날이면 남편에게 묻는다. 당신, 내가 나이 들어 힘없어지면 아버님처럼 내 손잡아 줄 거지? 하면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1초의 여유도 주지 않고 응수한다. 언감생심, 당장 양로원에 던져 넣을거야, 억울하면 아프지 말고 네 몸 건강하게 돌봐. 나 혼자만 나이 먹는 것처럼 매번 청승을 떠는 꼴이 보기 싫어서일게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조금도 서운하지 않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속담을 확실하게 믿기 때문인가. 지금껏 함께 살아온 세월의 더께 속에 자리잡은 남편의 심성에 대한 신뢰 때문인가.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한들 서러울 건 무엔가. 만약에, 만약에, 어머님 나이까지 존재할 수 있다면 그 시간들이 조금도 심심하지 않을 자신을 키우기 위해 지금 한순간이라도 쪼개 쓰는 것이 더 지혜로울 것이다.
길게 살고 볼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을 보면.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목록들이 자꾸 추가되는 것을 보면. 산다는 것이 그리 고통스러운 일만은 아님이 확실하다.
하 정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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