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원형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무리 백의 민족이라며 단일성을 강조하고 자랑해왔지만, 우리 조상들의 피도 여러 나라 여러 종족의 피와 섞이지 않았겠는가, 라고 짐작하고 있다. 누가 그런 말의 근거가 무언가, 라고 따진다면 뾰족하게 대답할 말은 없다.
그런데 굳이 대답을 해야 한다면 내가 어릴 적에 들은 이야기인데 한국 사람의 원형은 수염에 특징이 있다는 것이었다. 코밑 수염이 가늘게 양옆으로 뻗어있고, 턱밑 한 가운데 가는 수염이 길게 늘어뜨려진 사람이 한국인의 원형, 곧 한국산 순종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혹시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그런 모양의 수염을 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거나, 수염이 별로 나지 않는 사람들이 구레나룻 수염이 탐나서 한 번 해본 소리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국사 교과서에 나온 유명한 학자들의 수염이 으레 그런 모양이었기에 한국순종은 그런 형태의 수염을 가진 사람이려니 생각해보았을 뿐이다.
나의 아버님이나 형님도 늘 수염을 깎으시던 분들이었고, 어쩌다 수염을 깍지 않은 모습은 정말 텁수룩한 구레나룻 수염으로 한국산 순종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내가 막내였기 때문일까, 할아버지의 수염이 어떠했었는지에 대해선 기억이 없다. 나까지도 먹은 게 몽땅 수염으로 간 게 아닌지 의심이 들만큼 빨리 자라고 아주 풍성한 구레나룻형이다. 아담 이후 어느 누구도 순종이라고 우길만한 사람이 없을 터. 내가 한국산 순종이 아니라고 해서 무슨 흠이 되겠는가? 누가 뭐라 해도 어떤 땐 나도 한 번 수염을 기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깎기 귀찮아서) 아내에게 물어보지만, 아내는 막무가내 날마다 수염을 깍지 않는다고 성화이다. 면도기의 발달 때문일까, 아내들의 성화 때문일까, 수염 기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 한국인 순종 찾기란 더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요즈음엔 면도칼이나 자동 면도기가 발달돼서 얼굴을 회치듯 하지 않고서도 수염을 깎을 수 있지만, 나는 천성이 게으른 탓으로 곧잘 며칠씩 그대로 놔두다가 너무 길어지면 한 번에 깎기가 힘이 들고 전기 면도기로는 잘 깎여지지 않기 때문에 마지못해 깎는 회수가 늘어나는 편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수염을 깎는 회수가 훨씬 빈번해졌다. 뭐 특별히 회수가 잦아졌다기보다는 억지로라도 깎아야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하는 게 옳다.
우리 부부가 첫 외손자를 보러 가는 날이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해졌다. 우리의 형편 때문이다. 매주 화요일, 혹은 목요일 오후이다. 겨우 두어 시간 봐주고 돌아오지만, 수염 깎는 일만큼은 빼놓지 않고 신경을 써야 한다. 어쩌다가 딸이 근무하는 학교에서의 급한 일로 SOS라도 치는 날에는 언제고 먼저 수염을 깎고 손자에게 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 깎았거나 오전에 깎았더라도 출발 전에는 수염을 깎아야 한다. 이젠 누가 수염을 기르면 멋있겠다든지, 혹은 수염을 길러보라고 권유하더라도 링컨처럼 수염을 기를 수는 없게 됐다. 혹시 손자가 다 커서 ‘할아버지 수염을 기르면 멋있겠는데요’, 라고 말하면 생각해 볼 테지만, 그 손자가 그렇게 클 때까지 내가 세상에 살아있을 것 같지도 않거니와 버릇없는 손자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수염 기르는 건 일찍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엔 날마다 약을 한 움큼씩 먹어야 할만큼 병 보따리 같은 나를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마저 생겼다.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내 얼굴이 좋아졌고, 건강해 보인다는 것이다. 정말 면도를 자주해서 건강해지고 오래 살 것이라면 더 자주 면도를 해야 하겠지만, 공연히 안 좋은 걸 좋게 보일 필요는 없는데 면도한 얼굴을 보고 너무 수다떠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난다. 병 자랑이란 말과도 상충되고 말이다.
이쯤 되면 손자를 보러 가는데 왜 수염을 꼭 깎아야 하느냐고 누가 물어볼 때가 된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그냥 아이 봐주러 가는 게 아니다. 소위 ‘베이비 시터’로 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손자를 보고, 손자와 놀기 위해서 손자에게 가는 것이다. 그와 놀아주고, 말해주고, 노래해주고, 무엇보다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그를 꼭 껴안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그의 볼에 내 볼을 대고 비벼주기 위해서 손자에게 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참 별난 할아버지이다’, 라거나 ‘왕년에 그렇게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어’, 라면서 입을 삐죽일 사람도 있을 법하다. 사실은 시간 때우고 그냥 잠재워주기 위해서 손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난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억하지 못하잖아. 케이든이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잘 기억하도록 재미있게 놀아주란 말이야. 영어든 한국말이든 괜찮아. 노래도 해주고 책도 읽어주면서 케이든에게 낯선 사람이 되지 말란 말이야. 베이비 시터 돼 달라는 부탁이 아니야.’ 이것은 우리가 6개월 된 손자를 안았을 때 영어로 내려진 딸의 엄한(?) 특명이다.
약 력
▲ 해외문학 신인상으로 등단(1999년)
▲‘생명과 자유의 만남을 위하여’ 칼럼집 출판(1995년)
▲‘생명과 자유’월간 편지 발행 및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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