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토종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인의 자존심이
있지요. 한국 사람답게 살아야지요"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분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나라가 어디지요?
라고 물으면 미국이라고 답한다. 자녀들은 어느 학교를
다니지요? 라고 물으면 학교의 이름대신 "미국학교
다니지요"라고 대답하는 부모들도 있다.
우리아이는 미국애들을 싫어해요. 우리아이 학교에는 미국 애들이 주를
이루고있어요. 우리 아이 담임 선생은 미국사람이라서....등 등 등
작년의 일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이민
와서 중학교 8학년 된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상담을 왔는데, 그 아이의 말 첫마디가 "나는 미국 사람들
싫어요" 였다. 무슨 말인지 내용은 이해하지만, 그는
미국사람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어서 문제가
된 것이 분명했다. 그 학생에게 "나도 미국 사람인데?"
라고 말했더니, 그는 나를 다시 한번 보면서 거짓말
마세요. 목사님은 한국사람이잖아요. 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인종적 열등의식과 이 나라에 대한 이질감이
포함된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한인 이민자들의 상당수가 자기들은 미국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백인만이 미국사람이고 이 땅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인종적으로
백인이 아닐 뿐이지 미국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백인들이 미국 땅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분명한 사실은 미국은 모든 이민자들이 다
주인인 나라이다. 영어를 제대로 못하고, 문화적
습관이나, 사고구조가 미국화 되어있지 않아도 이 땅에
이민와서 생활 터전을 마련하고 사는 이상은 미국은
너무나 분명한 그 사람의 나라이다. 그 사람들은 어느
인종이든, 어디서 왔든지 상관없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한다.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개척정신이 곧 미국인의 정신처럼 표상 되고 있지만,
그들은 엄격히 말해서 자신들의 생존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망자들이었고, 이 땅에는 침략자들이었고,
불법체류자들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아메리카 대륙에 생명을 걸고 삶의 터전을 일구어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 그들이 바로 우리가 미국의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백인들이지 않은가? 그들의 땀흘린 노력과
이 땅에 대한 애착심은 주인다운 것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실제 주인은 아니다. 단지 역사의
흐름이 그들이 이 땅의 주인처럼 인식하도록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우리가 이 땅의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는
백인들의 조상도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와 똑 같은
이주민들이었음에 분명하다.
한인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말하면서도 생각과
정신은 한국 땅에 있고 몸만 미국 땅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일년에 한두 번 잠깐 갈까말까한 한국에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신을 쏟고 있고, 몸만 미국에 산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이 땅에 의식 있는 주인으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를 바랄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은
한국에도 미국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둘째치고 자신의
삶이 뿌리내릴 토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떠돌이들이다. 그런 정신적 떠돌이 이민자들이야말로 이
땅에서 주인된 자기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채 인종적
열등의식과 편견으로 백인을 이 나라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수 밖에 없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것이 이 땅의 기득권자들의 눈치나
살피며 숨죽이고 구석에 남겨진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이 땅과 이 나라에 대한
주인의식으로 모든 것에 책임감있게 열심히 일하며,
떳떳하게 행동하고, 기득권자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움과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개척해서 기득권자들에게 가르치고
제시해 가야 하는 적극성으로 성취되어야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책임과 권리를 동시에 이행하며 미국을 내 나라로
사랑하고 아끼고 가꾸어야 한다. 자녀들에게도 너희가 이
땅의 주인이고, 너희가 이 나라를 책임지고 건설해가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해주고 구체적으로 본을 보여주고
가르쳐야한다.
사춘기 아이들이 자신들이 한국인이라고 자부하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열등의식을 갖는 이유와, 미국인으로
동등한 주인의 권리와 책임을 갖고 있으면서도 백인만을
이 땅의 주인으로 착각하는 이유들이 바로 부모 세대들의
그런 자신감의 결핍에 있다.
자녀들에게 모국, 한국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부모들을 많이 만난다. 필요한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자녀가 미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생활
할 것이 확실하다면, 먼저 이 나라에 주인의식을 갖고, 이
땅에 미국인으로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싶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미국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라고 말하고
싶다.
김기웅<목사·젊음의 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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