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범(67) 의원이 지난 클린턴 행정부 시절,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대사 후임으로 스티븐 솔라즈 전 연방하원 아시아·태평양소위 위원장과 윈스턴 로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과 함께 3명의 최종 후보로 올라 인터뷰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그의 정치철학을 가늠하게 한다.
백악관 인터뷰에서 “만약 한·미 관계에 마찰이 생겼을 때 어느 편을 들겠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미국은 내가 배우고 성장한 아버지의 나라이고 한국은 나에게 생명과 문화유산을 준 어머니의 나라다. 당신의 질문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부싸움을 놓고 누구를 편들 것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나는 진심으로 두 분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상생’(Win Win)의 현답을 했다는 평가를 끌어냈지만 최종 결정에서 한인이라는 것 때문에 밀렸다. 허지만 한 민주당 고위 인사는 “다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의 정치적 이념은 소수계의 권익신장이다. 허지만 내밀한 그의 숨겨진 모습을 들여다 보면 그는 모든 인종이 차별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진정한 화합의 정치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소수든 다수든 피부색에 상관 없이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사랑과 이해의 정치구현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성교육을 중시하고 가정의 가치를 무엇보다 강조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바로서는 기초가 형성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가정’의 평온함이나 가족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청소년기를 보냈다. 4살 때 고아로 버려져 거리생활을 전전하다 미군 하우스보이를 거쳐 17살에 미국에 입양, 대학교수, 상원의원이 되기까지의 그의 인생은 한편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뿌리를 알아야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다며 정체성 교육에 남달리 심혈을 기울이는 그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2세 정치인 후원 장학회’를 지난 99년 설립, 소수민족인 우리자신의 권익을 지키고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계에도 한인 2세들을 진출시켜야 한다며 후진양성에 정성을 쏟고 있다.
그런가하면 신 의원은 한국에 살던 이복 동생 5명을 미국으로 데려와 모두 대학까지 공부를 시키고, 친아버지까지 모셨다. 또한 자신을 입양해준 양아버지를 생각해 자식을 낳지 않고 한국계인 아들 폴(34)과 딸 리사(33)를 입양, 훌륭하게 키웠으며 10명으로 시작해 현재 500여명으로 늘어난 한인 입양아들로 구성된 KIDS(Korean Identity Development Society)’를 조직, 한국 문화교육을 12년째 계속하고 있다.
주 상원 부의장으로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그는 동포사회의 초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간신히 마련한 가족 휴가지에서까지도 전화를 받으면 그길로 달려갈까. 얼마전 조그만 개척교회에서 강연한 그는 “한 사람이라도 변화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한창 북방정책에 노력을 기울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 당시 러시아와 중국역사에 정통한 그에게 청와대에서 자리를 제의했지만 군사정권이라는 이유로 거절, 조국은 사랑하되 불의한 이들과는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성품을 보여주었다.
필자가 신 의원을 처음 만난건 88년 여름이었다. 현재 주한 미 상공회의소 회장인 제프리 존스(김&장 법률사무소 국제변호사)의 어시스던트로 일하다 그의 소개로 한국에 온 지 한 달된 신 의원을 만나 3년간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존경을 갖게됐다. 이후 만 14년간 지속된 그와의 관계에서 한번도 그 사랑과 존경이 어긋남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성공한 겉모습만을 보려한다. 허지만 그가 세상에 나와 피눈물을 흘리며 처절하게 몸부림쳐 이루어 놓은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그의 가치와 깨달음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비로소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과 존경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장관들이나 국회의원들과 함께하면서 보여준 박식함이나 겸양은 오만한 그들로 하여금 존경심을 발동케 했으며, 사람을 가리지 않는 인간관계나 소탈함은 그들을 저으기 당황케 했다. 어디 그뿐인가.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결혼하게 된 필자를 위해 백화점에 가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한 쌍의 원앙과 우리 부부의 숟가락 젓가락을 고르고, 공부 더 하라고 미 대학에 추천서를 써주고, 바쁜 중에도 안부를 묻고 이 곳 조지아까지 날아와 생활을 챙기던 그의 따뜻한 인품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한결같다.
진정한 인격자는 자기가 손해를 보면서도 끝까지 정직하고 공정하며, 책임감 있게 말하고 행동하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자기의 권리처럼 존중하는 사람이다. 사회는 이런 신 의원 같은 사람들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것이다.
몸에 밴 겸손으로 언뜻보면 범부와 다를바 없어 보이는 신호범 의원, 허지만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정상에 우뚝 선 이 시대의 롤 모델(Role Model)이자 그의 겸손한 인품은 완성된 인간유형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지난 14년간 그의 행적을 보아 오면서 그의 철저한 자기절제와 타인에의 후덕함,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온전한 인품이나 겸손함은 성공한 겉 모습의 상원의원보다 몇곱절 더 빛나고 고귀한 것이라는 걸 알게됐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바로 이런 그의 ‘인간됨’으로 승리한 것이다.
빗속에서 피켓을 들고 당선사례를 하는 그에게 미국인들이 “당신같은 정치인은 처음본다. 동양인의 예의에 감동했오”라며 차창으로 손을 내밀어 뜨거운 신뢰를 보여준, 그는 이런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 때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발견 할 수 있으며 주류사회에 ‘한민족의 가치와 정신’을 바로 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ej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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