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많은 숲 무더기들이 들판에 형성되어 있다. 줄자로 재어서 가로 세로가 딱딱 맞게 인공적으로 심은 조림에 틀림없다. 이것을 보면 우선 논과 밭으로 알뜰히 가꾸면 많은 수확이 가능한 농경지가 될 터인데 왜 인공적으로 조림하여 들판을 망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혹은 농산물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돈이 되어서 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리는 숲은 답답한 풍경을 연출하여 경관을 해치는 방해물 같이 느껴진다. 거칠 것 없이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캘리포니아 출신 사람들에게는 몹시 답답한 자연이었다. 좀 훤해야지 말이지. 꼭 커튼을 꽁꽁 치고 방에 앉아 있는 기분을 어쩔 수 없어 불만을 토로하고 말았다.
숲은 산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산이야 원래 숲의 고향이고 또 울창할수록 물도 많고 산새와 짐승도 많은 법이니까. 그리고 산의 숲만 지켜도 나무는 충분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를 숲으로 인도한 독일인의 대답은 나를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자기도 그 이유를, 왜 조림을 들판에서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원래는 사람이 숲 속에 들어가 살 것이지 숲이 사람 속으로 찾아 나온 것이 아니니 들판에 숲이 있다고 아무런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다. 지구에 덮였던 빙하가 물러가고 난 다음에는 숲과 냇물만 있었지 논과 밭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숲을 산으로 쫓아내고 논과 밭을 일구어온 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산에 있는 나무들의 입장에서는 들판에 숲을 이루는 것이 고토수복이나 다름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물론 독일인들이 이런 사유의 결과로써 들판에 숲을 만들었는지 어쩐지는 나로서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 다음부터 나의 불평이 쑥 들어간 것만은 틀림없었다.
원래의 원시림은 산 속보다는 큰 강이 있는 들판이었다는 것을 나는 뒤에 알았고 지금도 브라질의 아마존 강변의 원시림이 지구상 마지막 남은 들판의 큰 숲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숲이 없어진 자리에 들어선 것이 도시화다. 도시의 형성은 물론 인류문명의 금자탑이며 청동기 시대 최대의 성과인 점은 틀림없다. 도시가 형성됨으로써 정치도 생기고 경제와 문화도 생겨나기 시작했고, 군사와 교통과 제국과 국가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도시화의 급속한 진전은 오늘에 이르러 우리 인류문명사의 사활을 가름하는 큰 짐으로 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도시화로 인한 사람의 집결은 무엇보다도 욕망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케 하며 인간은 증발하고 욕망과 그 충족만 남게 된 이상한 비인간화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코 진화가 아니다.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진선미가 더욱 높은 단계로 이어져야할 진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진보니 발전이니 하는 것들이 꼭 진화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또 물질적 발전이 정신적 성숙을 꼭 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지금에 와서야 확연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보다도 몇 배나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이 지구 자체가 대량 파괴와 종말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산으로 큰 비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구가 중병에 시달리며 생사기로에 서 있는데 그 위에 서식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이 지구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땅일 뿐만 아니라 다음 생에 태어나서 또다시 살 땅이며 세세 생생토록 억겁만년토록 윤회를 할 땅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더럽힐 수 없는 땅이며 파괴할 수 없는 땅인 것이다. 지구는 그 자체가 우리의 성지이며 성지를 순례하는 기분과 정신으로 살다갈 일이다. 모든 생명체의 영원한 윤회의 땅이므로 이러한 지구체험은 어떤 종교체험보다도 더 높은 정신적 차원의 깨달음이다.
사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삶의 모습이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모든 교육기관과 종교기관과 사회기관이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설교하고 가르칠 것이 이 일이다. 생각을 바꾸고 지구를 살림으로써 나를 살리자는 이 일 말이다.
이것이 진보니 발전이니 하는 망상을 접고 인류의 진화에 한 발짝 다가서는 길이다. 정신적 진화가 있는 동산이 에덴 동산이요, 지구의 생명이 아주 건강할 때가 극락 천당임을 알아야 한다. 저 하늘이 파괴되었는데 어느 하늘이 또 있어 천당을 빌 것이며 실낙원이 된 이 지구에서 무슨 극락정토가 다시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지구를 섬기는 일이 하느님과 부처님을 섬기는 일이요 이 땅과 물과 산을 존경하는 것이 모든 성인을 섬기는 일임을 명심할 일이다.
그리하여 저 산에 있는 숲을 이 들판으로 초청하고 숲과 숲 사이를 없던 강도 흐르게 하여 숲과 강이 어우러진 지상을 낙원으로 장엄함이 어떠할까.
숲이여, 들판으로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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