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구 소련, 중국 등 소위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공산국가에서는 인민재판이 시행돼왔다. 수년 전 북한에서 고위간부 10여 명이 농업정책 집행방해와 간첩죄로 주민 수천 명이 참여한 인민재판에서 총살형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민재판이 열리게 되면 주민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 공고문을 붙이고 가두방송을 하며, 작업하던 노동자들에게 참여를 종용하기도 한다.
구 소련의 인민재판은 공장의 노동자와 집단농장의 농민들이 선출한 판사들에 의해 진행되고, 경미한 민사사건이나 경범죄 등은 주민들이 호선한 재판위원이 주관한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주민들의 참여의식을 고취시키고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인민재판을 시행해 왔다고 하지만, 정적을 공개 처단하고 주민을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음으로써 사회를 통제하고 지배구조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비난이 쏟아진 지 오래다.
이처럼 악명 높은 인민재판이지만 ‘주민의 참여’란 요소를 추출해 잘만 활용하면 순기능을 찾을 수도 있다. 강제적인 참여 대신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에 둔 ‘커뮤니티 인민재판’으로 변형시킨다면 가능하다. 특히 법을 꿰뚫고 있어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바람에 법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사람들의 비행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커뮤니티 인민재판으로 본때를 보일 수 있다.
성실하게 일하는 대다수 변호사들까지 욕 먹이는 일부 ‘불량’ 변호사들이 커뮤니티 인민재판의 대상이다. 이들은 의뢰인이 영어를 잘 모르거나, 알아도 깨알같은 계약서를 일일이 뜯어보지 않는 통례를 악용한다. 의뢰인과 갈등이 생겼을 때 서명된 계약서만 들이밀며 ‘법대로’를 고집한다. 일단 변호사비를 받았으니 “세월이 좀먹나” 하다가 의뢰인이 시정을 요구하거나, 다른 변호사에 맡기겠다며 적정액을 환불해 달라고 하면 “이유 없다”로 응수한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을지 모르지만 이들 양심불량자들은 커뮤니티 인민재판에 회부해야 한다.
한국에서 사기로 유죄를 선고받고도 미국에 다시 들어와 정직한 변호사 행세를 하는 사람도 있다. 범법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한인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버젓이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의뢰인들이 유사한 피해를 보고 끌탕을 할 것이 걱정된다. 커뮤니티 인민재판이 없으면 이러한 유형의 변호사들은 의뢰인을 얕잡아보고 애를 먹일 게 뻔하다.
최근 연방수사국이 자동차보험 사기와 관련 일부 한인변호사를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사법처리 여부가 드러나겠지만, 교묘하게 부정을 저지르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는 현실은 법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커뮤니티 인민재판의 영역이다.
업무와 관련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변호사들도 있다. 실제로 한 변호사가 연방검찰의 함정수사에 걸려 체포되기도 했다. 뇌물수수에 연루된 변호사가 이 변호사뿐이고 전무후무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돈이 개입된 ‘검은 고리’를 끊어버리려면 커뮤니티 인민재판이 제격이다.
한인사회가 함께 하는 커뮤니티 인민재판은 돈벌이에 혈안이 돼 비리에 둔감해진 변호사를 족집게처럼 집어낸다. 배심원의 유죄평결처럼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커뮤니티에 ‘죄’를 널리 알리는 효과가 있다. 판사의 형량선고처럼 확실한 매듭짓기는 아니지만 공동체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수모를 겪게 하고 비즈니스를 심하게 흔들 수는 있다.
지금 변호사협회의 자정노력은 더 없이 중요하다. 민원을 접수한 뒤 정기적으로 언론에 공개해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미우나 고우나 동료”란 생각으로 쉬쉬한다면 업계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쇄신하기 어렵다. 자신이 잘 아는 변호사라도 비위사실이 있으면 솎아내야 한다. 애지중지하던 장수 마속이 군율을 어겨 중요한 전투에서 패하자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참형을 내렸다는 얘기는 음미할 만하다.
사회봉사 단체들도 민원 접수창구를 개설해 커뮤니티 인민재판에 동참할 수 있다. 법을 모르는 의뢰인을 골탕먹이거나 법을 짓밟는 변호사 명단을 백일하에 드러내 더 이상 한인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해 의뢰인의 발길이 끊어지고 급기야 문을 닫도록 해야 한다. 커뮤니티 인민재판으로 ‘썩은 사과’를 골라내 진정으로 존경받는 변호사 사회가 됐으면 한다. bong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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